"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깨뜨리고 분배정의에 한 발짝 더 다가가야"
[사진- 김경집 작가]
[이코리아] '자유' '저항정신' '보편적 가치'. 지난 1960년대를 관통하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에 담긴 함의는 2023년 오늘도 요긴하다. 하지만 자유와 저항정신이 60년대 지구촌을 변화시킨 것과 달리, 현 시대에는 차별과 분노, 증오가 넘친다. 한국 사회가 그렇고 미국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관용이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 강자와 약자가 서로 보듬고 사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코리아>는 그 답을 인문학자 김경집 작가로부터 직접 들어봤다.
◇ 작가님 안녕하세요. 근 1년여 만에 새 책으로 뵙는 것 같은데요.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작업실에 오가는 생활이었지만 코로나 이후 주로 집에서 작업합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 종일 집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일의 반복입니다. 다행히 집 뒤가 북한산 족두리 봉이고 앞산에 탕춘대능선 둘레길이 있어 2시간쯤 산책 겸 등산합니다. 가끔은 비봉으로 올라 대남문으로 내려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재에서 클래식 음악 듣는 일이 일상이고 가끔 친한 이들과 골프도 즐깁니다.
◇ ‘진격의 10년, 1960년대’라는 이번 책의 제목도 독특합니다. 작가님께서는 제목만으로 책의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어 주시는데요. ‘엄마 인문학’이라든지, ‘어른은 진보다’라는 제목의 전 작품들도 서로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단어를 묶어 책을 열어보게 합니다.
아빠들은 꼰대가 되기 쉽습니다. 직업에 묶여 있고 체제에 순응합니다. 20세기 ‘속도와 효율’의 시대에는 누가 기존의 질서와 체제에 순응하고 편입하느냐에 의해 삶이 결정되었지만 21세기 ‘창조, 혁신, 융합’의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필요합니다. 엄마들은 꼰대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훨씬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세상을 물려주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넘겨주려면 엄마들이 공부하고 연대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더 빠르고 현명합니다. 그 단초가 인문학적 성찰에서 온다고 봅니다.
‘어른은 진보다’ 역시 흔히 나이 들면 보수가 된다는 말에 대한 반론입니다. 누구나 젊었을 때는 먹고 살기 위해 적당히 비겁하게 삽니다. 청년 시절 진보적 가치에 매료되는 건 잃을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용기를 내지만, 점차 나이 들어가면서 손에 쥐는 게 생기면서 그걸 외면합니다. 그러다 나이 들어 퇴직하면 더 이상 해고의 공포를 느끼지 않습니다. 당연히 용기를 내야 하는 나이입니다.
그러나 보수화되는 걸 당연한 것으로 여기니 심지어 수구적으로 퇴행합니다. 그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상을 더 나은 사회로 만들려면 노인들이 용기와 지혜를 발휘해서 보다 나은 가치를 위해 외쳐야 합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은 진보여야 한다는 명제를 담고 있습니다.
◇ 작가님은 부당한 차별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이고 용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023년의 우리 사회에 이 의무가 발현되지 않고 있어 보이는데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60~70년대를 보다가 지금 청년들을 보면 조금 아쉽고 답답할 수 있죠. 그러나 저는 우리가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왜냐면 저들이 저렇게 살게 만들어 놓은 게 우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전 세대는 취직 걱정도 결혼 걱정도 해본 적이 없어요. 취업이 되니깐 내가 직장을 가지고 한 달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깐 할 수 있었죠. 그러나 청년들은 대학 다닐 때 이미 채무자예요. 지금은 나 혼자 감수하기도 힘들어요. 그렇게 만들어 놓고 뭐 패기가 없다고 말할 수 없는거죠. 애들이 왜 보수화 되는지 아세요? 진보적이면 나한테 돌아오는 게 없어서예요.
저는 그게 굳이 따지면 이명박 정부 때 수입 소고기 시위가 시작이었다고 봐요. 엄마들이랑 학생들이 나와 평화롭게 시위를 했는데, 돌아온 건, 정부가 시위 사진을 다 찍어가서 집에 찾아오고 겁을 주는 거예요. '바뀐 건 없고, 나만 손해야. 어른들은 믿을 게 안돼' 그게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봐요. 반면에 60년대를 거치면서 축적되어 경험했던 사람들은 조금씩 변색이 되더라도 본질에 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요. 저는 그게 중요한 자산이라고 봐요. 그런데 그게 없으니깐 그냥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 저서 <진격의 10년, 1960년대>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1960년대를 관통하는 자유, 저항정신 열정이 세상을 변혁시켰다는 논리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서구사회는 예전같지 않습니다. 미국만 봐도 의사당 난입 사건 등 민주주의 위기를 겪고 있고, 독일도 최근 나치 추종세력의 발호로 사회가 혼란스럽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1960년대는 모든 불의와 모순에 대해 한꺼번에 비판하고 저항하며 맞서 싸운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은 청년들이 맡았습니다. 덕분에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의 모든 기준점들이 마련되었습니다.
트럼프의 등장은 1960년대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시대에 던졌던 가치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유럽에서 극우세력이 득세하는 것 또한 좌파의 퇴행이 아니라 1960년대의 가치를 단절시킨 국소화의 울타리에 스스로 갇혔기 때문입니다. 균형을 상실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 끔직한 결과에 직면하기 전에 보편적 가치의 협력과 상호이해의 방식을 찾아내고 실천해야 합니다.
2020년대는 전 지구적으로 우경화하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역사의 흐름은 ‘작용과 반작용’의 주기를 따르지만 이런 우경화가 국수주의에 기반을 둔 전체주의에 빠질 때 사회는 불평등과 불만을 키우게 되고 결국 싸움으로 발화됩니다. 전쟁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열려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2020년대가 바로 그런 변곡점에 있다는 건 매우 위험한 신호입니다. 그럴수록 인류 보편적 가치, 세계시민권자로서의 태도 등에 대해 성찰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2023년 대한민국에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전 세계가 자본과 기술의 힘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인류보편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지 못합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깨뜨리고 분배정의에 한 발짝 더 다가가야 하는 게 시대정신입니다. 대한민국의 현재는 보수를 참칭하는 수구세력의 발호와 이익의 독점에 대한 비판정신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시대정신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언론 행태를 보면 그 첨병에 서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옹호하고 앞장서며 이익의 부스러기를 탐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입니다.
◇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라고 하셨는데요. 작가님은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돈보다 더 강력하게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있을까요.
돈은 중요합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자신의 삶을 실현할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일입니다. 돈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걸 너무나 흔하게 봅니다. 그러나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돈에 굴종하지 않을 자기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거기에 도달하면 그 이상은 탐욕이라는 걸 깨닫고 스스로를 경계해야 돈의 노예가 되지 않겠지요. 물론 욕망은 무한해서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럴수록 그 욕망에 휘둘리지 않아야 내 삶이 시시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작가님은 삶의 최우선 가치를 어디에 두십니까.
개인적으로 최우선 가치는 자유입니다. 물론 행복을 추구하고 사랑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거기에 자유가 없다면 불가능한 가치가 아닐까요? 사회가 보다 나은 가치로 진화하고 개혁되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무이자 권리라 여깁니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거 끝까지 하며 살 수 있기 위해 날마다 진화하는 것이 인생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 근래에 AI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인공지능 개발 속도도 빠르고 그만큼 일상생활의 변화도 시나브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가 인류의 궁극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요.
호들갑떨 건 없다고 봅니다. 역사와 문명은 늘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여깁니다. 어느 정도의 부작용도 있을 것이고 거기에 적응하는 데에 어려움도 있겠지만 앞으로의 발전이 삶과 사회에 더 긍정적으로 작동될 것이라 믿습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정보의 독점이 깨뜨려짐으로써 예전의 음험한 속성들이 적어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게 된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 득이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가짜뉴스의 범람처럼 그 부작용도 있겠지만 그걸 걸러낼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겁니다.
◇ 끝으로 “우리는 언제나 POST+무엇을 주목해야한다.” 선생님의 이 말씀에 담긴 함의가 궁금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주목해야 할까요.
이미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합니다. ‘포스트모던’은 특정한 사조가 아닙니다. 기존의 질서와 체제를 비판하고 타개하려는 대안이 포스트모던의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post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현재 그리고 과거가 어떠한지를 연속선상에서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정치와 사회입니까? 거짓이, 사악한 욕망들이 야합하여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거기에 빠르게 순응합니다. 퇴행도 이런 퇴행이 없습니다. 지금의 장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정신이라 여깁니다.
※작가 소개
전 가톨릭대학교 교수.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신학, 같은 대학원에서 예술철학과 사회철학을 공부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인간학과 영성 과정을 가르쳤다. 인문학자로, 현재는 자유롭게 글을 쓰며 지역사회문화운동 등에 힘쓰고 있다. 〈책탐〉으로 2010년 ‘한국출판평론상’을 받았고, 〈생각의 인프라에 투자하라〉,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등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외에 〈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 〈인문학은 밥이다〉, 〈생각의 융합〉 등의 인문교양서와 〈정의, 나만 지키면 손해 아닌가요?〉, 〈고전, 어떻게 읽을까?〉 등의 청소년도서, 그리고 〈죽으러 온 예수 죽이러 온 예수〉 등 종교에 관한 책 등 40여 권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