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23-09-07 15:30 지면 : 2023-09-08 27면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비즈니스 아이디어, 핵심기술, C레벨의 맨파워 등을 스타트업의 보유역량이라 한다. 사실 이 역량들은 목걸이의 구슬과도 같다. 구슬을 꿰지 않으면 목걸이가 되지 못한다. 최종 상품은 구슬이 아니고 목걸이여야 하며, 부가가치 또한 높아진다. 구슬은 부품일 뿐이다.
최근 스타트업 투자기관들의 투자성향이 구슬에 집중하는 경향이 아쉽고, 우려된다. 이런 추세다 보니 추상적이고, 어렴풋한 사업들이 많아진다. 좋은 대학 나온 C레벨 팀들이니 잘할 것이라는 추상적 긍정이 묻어있다. 뭔가 될 것 같은 나름 독창적이고 좋은 기술이니 투자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어렴풋함도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집단이다. 최근에는 ESG나 소셜을 표방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위험한 것은 성장알고리즘인 비즈니스모델이 명확히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5년 이후부터 형성된 스타트업 1.0 시대에는 온라인에서 회원을 모으는데 집중했었다. 당시에는 가입자 수가 곧 기업가치였다. 그러나 유사서비스들이 늘어나고 중복회원가입이 늘면서 진성회원이나 회원의 활동여부를 측정하는 MAU(Monthly Active User)나 DAU(Daily Active User)등 기업가치의 기준으로 전환된다. 이 진성회원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기업의 노력이 빅데이터를 중시하는 2.0 시대를 낳았다. 보상시스템이나 금융시스템의 진성회원화를 위한 빅데이터 사업은 2.0 비즈니스의 대표적 모델이었다. 이때까지 스타트업 투자는 사실 비즈니스모델보다 회원모집 역량이나 빅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쌓을 수 있는 기반기술, 참신한 아이디어와 유사 경험을 가진 인력들이 중시됐다.
이후 스몰데이터가 중시되는 3.0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댓글을 달고,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며, 심지어 화폐까지 만들어내는 프로슈머가 주체가 되는 시대가 오면서 구슬보다는 목걸이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탄생한다. 문제는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성향을 갖는 3.0 시대의 대중소비자들은 목표가 명확하다는 점이다. 그만큼 정이나 습관에 치우치지 않는다. 대부분 앱마켓에서 다운로드 10만을 유지하고 있는 앱이 실제 유효 회원수는 1만 명 미만이며, 월방문자수는 700명에 그치고 있는 현상이 바로 3.0 시대 스타트업들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3.0 시대 주소비자인 디지털노마드는 목적이 분명하기에 떠나기도 쉽다. ICQ에서 네이트온으로 갈아탄 노마드들이 카카오톡으로 옮겨온 지 10여 년이 넘었다. 디지털노마드들의 특성상 언제까지 국민대표 메신저가 카카오톡에 머무를 것이라 믿는 것은 크나큰 오산이다.
이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투자기관들의 투자관점도 변해야 한다. 출신학교, C레벨팀, 특허, 기술, 경험, 회원 수, 예상매출 등 '구슬'의 완성도에 초점을 맞춘 투자를 집행하는 것은 3.0 시대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이러한 '구슬'에 다양한 임팩트금융이나 기업가치가 확장될 거버넌스가 결합된 비즈니스모델이 제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목걸이의 창조'다. 이제 구슬의 관점보다는 목걸이의 관점으로 스타트업을 바라보기 바란다. 기획된 비즈니스 모델을 실행하는데 투자 이후 이 기업이 어떤 인재를 더 확충해야 하고, 어떤 기술을 유입해야 하는지가 현재 보유한 C레벨팀이나 보유기술보다 더 중요하다. 기존 투자접근 방식과는 다른 각도로 스타트업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이 목걸이에 대한 사회적 합목적성, 디자인적 가치, 지속가능성에 대한 예측을 초점으로 투자하게 되면 이 투자금은 구슬을 목걸이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스타트업 또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창업 이후 린테스트로 축적된 시장경험을 기반으로 명확한 미래 비즈니스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지속가능하며, 확장성이 높은 모델 즉 '가치 있는 목걸이'를 설계해야 한다. 구슬이 아닌 목걸이의 비전과 가능성을 투자자에게 제시하고, 이를 완성시키기 위해 투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이것이 4.0 비즈니스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생존전략이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발행일 : 2023-08-24 16:00 지면 : 2023-08-25 27면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스마트, 혁신, 플랫폼, 디지털 등은 내성이 강해진 시대언어가 됐다. 의미와 상관없이 남용됐기 때문이다. '혁신'이 붙으면 오히려 혁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정보기술이 조금만 들어가면 스마트라는 단어를 삽입하는 것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스마트'는 사전적으로 '똑똑한'으로 해석된다. 똑똑하다는 것은 지혜롭게 알아서 척척 한다는 의미다. 개인지향적 사회에서 스마트는 '개인맞춤형'을 의미한다. 소비자가 불편해하지 않고, 서비스에 만족하고, 감동하도록 알아서 해주는 게 개인맞춤형이다. 정보홍수의 시대에 의사결정장애로 지쳐있는 소비자에게 개인맞춤형 서비스는 스마트의 대표적 시대정신이자 목표다. 최근 챗GPT 같은 인공지능(AI) 비서서비스가 대표적인 개인맞춤형 스마트 모델이다.
그러나 자본과 기술, 조직구성이 취약한 스타트업은 스마트의 늪에 빠지기 쉽다. 어느 스타트업이 기술을 개발했다 치자. 이 기술로 제품의 정확도가 높아지거나, 빠르게 만들어주거나, 작아질 수는 있으나 이것이 무조건 스마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자기기가 작아지고 가벼워진 반면 배터리용량이 줄어 사용시간이 감소했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스마트라 할 수 없다.
경영학에서는 잠재시장을 깨워야 스마트한 것으로 가르치지만 잠재수요를 깨우기 위한 시간과 자금, 인력과 브랜드를 갖춘 곳은 대기업밖에 없다. 한두 스타트업이 성공할 수 있으나 부러움의 대상일 뿐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쫓아야 할 길은 아니다. 잠재시장을 창조하고, 공략하는 것만으로는 스마트라 할 수 없다.
스타트업이 스마트해야 한다면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 스타트업은 소비자들에게 보다 가까이 갈 수 있기에 그들의 소리를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블루오션보다는 퍼플오션에 접근하기를 바란다. 퍼플오션 진입에 필요한 목표이자 정신적 무장이 바로 스마트다.
스타트업 경영자라면 스스로 돌아보자. 지금 서비스나 제품, 비즈니스모델이 진정한 소비자 개인맞춤형 모델인가. 약을 개발하고, 임상을 마쳐 출시를 앞둔 의료스타트업이라면 스스로 물어보자. 개인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했으며 건강상태, 성별, 습관, 심리, 생활환경에 따라 맞춤형 치료나 처방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는가. 이런 스몰 데이터가 없다면 당신이 만든 약은 대중치료용 약이 될 수는 있어도 스마트한 약이라고는 할 수 없다. 대중치료제로 출시되려면 또 광고를 해야 하고, 부작용에 시달려야 하고, 병원이나 의사에게 의존해야 한다. 심지어 부작용이 두려워 약효를 줄이거나 약하게 만들어야 하고, 유사 회사와 경쟁해야 한다.
이제 4.0의 시대다.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시장성장의 발전요소들이 상호 융합되는 시대다. 디지털 4.0, 의료 4.0, 자본주의 4.0, 심지어 정부 4.0마저도 모두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간다. 바로 개인맞춤형이다. 4.0 비즈니스는 스몰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개인맞춤형 프로젝트다.
스마트한 스타트업, 스마트한 비즈니스모델, 스마트한 서비스, 스마트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또 높은 수준의 4.0 비즈니스를 실천하기 위해 개인맞춤형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고객 또는 회원의 스몰데이터를 마이닝하고, 마이닝한 데이터를 개더링 하고, 프로파일링하는 데이터의 정보화단계와 구축된 정보를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맞춤형 오토챗봇, 퍼스널리포트, 개인맞춤형 솔루션, AI아나운싱 등 다양한 맞춤형 서비스를 추가, 보완해야 한다. 이러한 역량이 갖춰져야만 진정한 스마트한 스타트업 4.0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hnawool@gmail.com
행일 : 2023-07-13 16:00 지면 : 2023-07-14 27면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X(디지털전환), DTx(디지털치료제), 디지털헬스케어, 디지털웰니스, 빅데이터·AI 등은 모두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이다. 반면 정보화전환, 전자약, 사물인터넷(IoT), 정보데이터 등은 정보기술(IT)이라는 수식어가 숨겨져 있다. 그럼 우리는 IT와 디지털을 제대로 구분하고 있을까? IT와 디지털은 당연히 상호 높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칫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면 전략수립이나, 비즈니스모델링,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큰 오류를 일으키게 된다.
개인맞춤형 화장품을 예로 들어보자. 정확도가 높은 피부측정 IT진단기기로 고객의 현재 피부상태를 측정하고 맞춤형 화장품을 제조해 주는 IT기반 사업모델이다. 그러나 피부측정 IT진단기기를 우리는 디지털기기라 부르지는 않는다. 측정수치를 아날로그 눈금표시에서 디지털숫자로 표현한다고 디지털기기는 아니다.
피부측정 IT진단기기의 정확도가 아무리 높더라도 오늘 측정한 피부상태가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피부상태는 환경이나 체질, 주생활 장소, 습관 등에 의해 변화하기 때문이다. 즉, 피부측정값의 방향, 정도와 빈도 등을 측정하는 데이터 변화 값을 확보하고, 분석해야 제대로 된 맞춤형 화장품이 탄생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화장품 원료라도 내 피부상태에 맞는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용에 있어 적정량과 적정 빈도 또한 중요하다. 이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시계열 데이터다. 피부노화의 방향, 피부변화의 속도와 변화량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측정하고 사용자의 환경, 심리, 습관 등에 대한 데이터가 결합된 결과에 맞는 원료가 배합된 화장품이 진정한 개인맞춤형 화장품이 된다.
이것이 IT와 디지털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IT가 서비스제공자나 기업 또는 측정자 주도의 시스템이라면, 디지털은 사용자나 고객, 피측정자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시스템이다. IT가 강도와 정확성이라는 횡단면분석에 중점을 둔다면 디지털은 사용자 데이터의 변화 즉, 시계열에 중점을 두게 된다. 결국 최근 대두되고 있는 Dx, DTx 등은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된 복합시계열분석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DX의 궁극적 목적은 개인맞춤형을 위한 유효성 있는 데이터 확보여야 한다. 개인맞춤형이 가능한 것은 시계열데이터가 축적되어 있다는 전제 위에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는 평균값이지 내 데이터는 아니다. 스몰데이터 또는 마이데이터가 빅데이터와 비교 분석될 때 개인맞춤형의 방향과 전략이 나오게 된다.
현재 정부는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 위원회를 구성, 전자정부에서 디지털정부로 패러다임 전환을 꾀하고 있다. DX는 디지털 정부로 전환에 궁극적 목표가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검색, 발급이 가능한 '정부 24' 서비스가 주요 골자인 전자정부에서 개인 세금 알림, 희망 기관 민원서류 자동전송, 개인 공지나 알람, 시뮬레이션 서비스 등 개인맞춤형 콘텐츠가 제공되는 것이 디지털정부의 핵심골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디지털정부의 핵심 또한 개인맞춤형이라 할 수 있다.
IT와 디지털을 구분하고, 분별하는 것은 스타트업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 최근 수많은 헬스케어 디바이스기업이 다양한 제품군을 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도나 편리성, 가격 등에 있어 우수 IT제품들은 많아 보이나 눈에 띄게 디지털 기반의 디바이스 즉, 데이터 중심의 제품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수백만원 하는 고가의 안마기나 치료기기들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매출액이 1000억원이 넘고, 수십 년간 수행해 오던 사업모델을 디지털중심으로 전환하라고 중견기업들에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도전임에 틀림없다. 반면에 혁신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스타트업에게는 기회가 된다. 차별화되고 지속가능한 시장진입과 성장을 위해서라면 고객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DX가 스타트업 비즈니스모델에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hnawool@gmail.com
발행일 : 2023-06-08 16:00 지면 : 2023-06-09 27면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사회가 다양화되고 다각화됨에 따라 개인이 누리는 자유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눈에 띄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상의 자유(다름), 기회의 자유(다양성), 표현의 자유(다채로움)로 표현된다. 다 같은 자유지만 자세히 보면 주체나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다채로움’이 개인을 중심으로 한 자유라면, ‘다양성’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자유다. ‘다름’은 국가나 인류사회적 가치 중심의 자유로 구분된다.
최근 신체적으로는 아직 남성이나 자신이 여성임을 주장하는 트랜스젠더가 여성탈의실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한 미국의 한 헬스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사례는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공동체의 가치의 충돌로 보인다. 성전환이라는 개인의 선택은 ‘다채로움’의 자유(free)이나 공동체에 있어서는 수천년간 내려온 전통법을 일시에 바꿔야 하는 갈등의 소지를 낳는다. 즉, 공동체가 갖는 ‘다양성’의 자유(freedom)와 개인의 자유가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퀴어 축제를 서울시청 광장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열어달라는 일부 단체의 요청이 있었다. ‘다채로움’을 누리는 이들의 자유를 인정하되, 공동체가 갖는 다양성의 자유도 존중해 달라는 의미였다고 볼 수 있다. 바로 보지 않을 권리다. 여성 탈의실에 아직 남성의 신체를 가진 성소수자를 거절할 수 있는 것은 공동체의 권리일 수 있다. 지나치게 개인의 다채로움을 내세워 인권과 권리, 개인의 자유만을 주장한다면 공동체의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 이미 사회가 인정하고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의 인권과 권리, 자유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동체가 갖는 ‘다양성’을 절대선으로 간주하고, 개인의 ‘다채로움’을 악으로 단정하는 것 또한 매우 위험한 집단주의적 사고다. 중요한 것은 개인과 공동체간 상호 존중이다. 공동체가 개인의 다채로움에 대한 자유를 존중하지 않으면 집단주의가 되기 쉽고, 반대로 개인이 공동체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기주의가 되기 쉽다. 서로 상대에 대한 배려없이 권리만 요구한다면 사회적 갈등은 무한 반복될 것이다.
물론 다채로움은 혁신을 부른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공동체의 가치이동을 부르는 새로운 도전정신이 항상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인류사회를 멈추지 않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혁신의 상징 ‘타다’ 서비스가 법적다툼을 끝내고 4년 만에 결국 법원으로부터 합법이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기업 입장에서야 이제 와서 통탄할 일이지만 앞서 자유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타다’는 적법성 여부를 떠나 대중교통이라는 공동체의 ‘다양성’을 위협하는 사업모델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타다’와는 달리 현재까지 유료로 운영되고 있는 ‘장애인 택시’ 서비스는 혁신의 ‘다채로움’이 공동체의 ‘다양성’과 어떻게 조화롭게 융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선례로 남게 되었다.
혁신의 아이콘 스타트업은 자신의 혁신을 사회가 도입하지 않는다고 투정 부릴 일도 아니다. 그러기 전에 스타트업의 ‘다채로운 혁신’이 어떻게 공동체의 ‘다양성’과 융합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스타트업의 아이템이 혁신적이더라도 공동체의 가치이동과 병행하는 노력이 없다면 이는 사회적으로 방해받고, 외면당하게 된다. 최근에는 사회적 불편함 해소를 앞세워 이익을 추구하던 기존 기업에 우리 사회는 공동체의 공동가치추구와 조화로움을 추가로 요구해 왔다. 대표적 지표가 바로 ESG다. ESG는 ‘상호 합의된 공동체의 가치를 사회다수가 참여하는 수단을 통해 투명하게 수행하라’는 21세기 인류사회가 기업에 주는 강력한 메시지다. ‘타다’의 판결을 환영하지만 다시 한번 이번 사례를 통해 스타트업이 혁신을 시장에 녹여 넣음에 ESG적 마음가짐과 지혜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hnawool@gmail.com
발행일 : 2023-06-22 16:00 지면 : 2023-06-23 27면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챗GPT 열풍이 거세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개념이 제시된 후 유행하던 사회적 현상과 비슷하다. 당시 갑자기 수많은 4차 산업혁명 전문가들이 나타나 조찬모임과 최고위과정, 특강, 출판 등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외쳤었다. 당시에 수많은 직업이 없어질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현재 우리 사회에는 커다란 혁신적 패러다임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세계관과 이를 이끄는 시대정신이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화두는 던졌으나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데 부족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생성형 AI’를 예로 들어보자. 많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들이 AI전문가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실제 지금 우리는 남이 만들어 놓은 AI의 룰(rule) 안에서 사용자로서 신기해하고 부러워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야 할 새로운 세계관과 이를 실천할 시대정신이다.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시대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웹 2.0의 탄생은 무수한 유니콘기업을 탄생시켰다.‘ESG’는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와 결합되어 무궁무진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새로운 세계관이 탄생하고, 이를 이끄는 시대정신이 제시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모습을 보며 패스트팔로워에 안주하는 수동적 행태를 이제는 반성해야 한다. 21세기 들어 20여년간 애플, 페이스북, 구글, 유튜브, 테슬라, 비트코인 등이 만들어낸 부와 가치를 우리는 알고 있다. 패러다임 시프트를 넘어 코어시프트를 이끄는 이 힘은 세상을 바라보는 메커니즘에 창의성이 결합됨으로써 새로운 영역을 창조한다. 대중미디어에서 1인 미디어 시대를 연 페이스북은 기존 미디어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놓은 대표주자다. 화석연료가 주를 이루던 교통수단을 전기차로 전환시킨 테슬라의 철학적 창의성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완성시켰던 애플의 잡스를 우리는 언제까지 부러워만 할 것인가?
이들의 혁신은 개선에 머무르지 않았다. 기존 시장에서 부족하고, 불편한 점을 개선한 혁신 수준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유니버스 차원을 넘어 메타버스를 창조해 냈다. 이 퍼스트무버들의 창의성을 빨리 도입하고 활용하기 위해 챗GPT 열풍에 동참하는 것을 말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챗GPT라는 생성성 AI를 창조해 낸 이들의 세계관과 시대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생성형 AI를 창조해 낸 퍼스트무버들은 인문철학적 기반 하에 고도의 창의성이 결합된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으로 시대정신을 만들어 냈다.
우리 사회가 고용창출이나 높은 매출과 수익을 스타트업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타트업들은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해 낼 수 있는 환경과 역량 그리고 다채로움과 다양성을 장점으로 갖고 있다. 개발자로 추측되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블록체인을 만들고 암호화폐를 보급할 때 던진 인문학적 화두는 ‘Decentralized’였다. ‘탈중앙화’ 또는 ‘탈공간화’로 해석되는 이 철학적 명제는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탄생시켰으며, ‘Decentralized’라는 이 시대정신이 있었기에 암호화폐 탄생의 정당성과 향후 나아갈 발전방향이 명확히 제시되었다. web 2.0의 참여, 공유, 개방의 시대정신은 이후 스마트폰, 페이스북, 유튜브, 우버 등 다양한 혁신비즈니스 모델을 탄생시켰다.
시대를 읽고 실천하는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시대적 맥락을 제대로 읽는 리터러시(문해력)가 요구된다. 더불어 사회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며 생성형 AI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메타인지 능력 또한 필요하다. 이들을 통해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시대정신이 제시된다. 모든 강력한 혁신 뒤에는 이 철학적 세계관과 시대정신이 숨겨져 있었다. 한국의 스타트업 중에서도 유니콘이란 규모의 목표에만 머무르지 말고 새로운 메타버스를 열 세계관과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창조적 패스트무버가 탄생하기를 바란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hnawool@gmail.com
발행일 : 2023-05-11 16:00 지면 : 2023-05-12 27면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현대인이 생존을 위한 살아가는 공간을 유니버스라고 한다. 한정된 공간의 질서유지를 위해 도덕적 원칙과 전통, 법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받게 된다. 매슬로우는 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 자기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로 유니버스에서 안전하게 행복하게 살기 위한 인간의 욕구를 정의내리고 있다. 공리주의, 국가와 사회, 가문 등은 공간 내에서 개인의 평안과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화(centralizing)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인간은 한정된 공간 내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을 강요받고, 공간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강요받아왔다. 더불어 공간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 노력하고, 1등과 성공을 거두는 제로섬 경쟁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역사시대 이후 2000년이 지날 즈음인 1950년 전후로 탈공간화(decentralizing)에 대한 시도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계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적으로는 민주화요구가 일기 시작했다. 미술의 경우 탈모더니즘(decentralizing)을 외치며 전위예술, 해체주의 예술이 탄생한다.
정보통신네트워크 기술은 개인마저도 고립된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게 만든다. 세계 어느 곳에 있는 이들과도 소통이 가능하게 되면서 재택근무나 여행의 자유를 넘어 온라인에서 커뮤니티와 팬덤이 만들어진다. 그들이 추구하는 그 무엇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탈공간화(decentralizing)된 새로운 영역이 탄생한 것이다. 이를 즐기고 누리는 이들을 디지털노마드(디지털유목민)이라 한다.
메타버스는 탈공간화(decentralizing)를 추구하는 디지털노마드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이다. 그들은 유니버스 속 공간의 질서를 강요받는 것을 답답해한다. 그들은 유니버스에서 필요하다고 배운 가치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 한다. 유니버스 속 세상 사람들이 보면 쓸데없어 보이는 가치일 수 있다.
대표적 메타버스로는 ‘게임’과 ‘오타쿠’ 영역을 넘어 최근에는 ‘캠핑’, ‘반려동물’ 영역을 들 수 있다. 운동과 자기만족이 결합된 바디프로필 영역도 새로운 메타버스의 가치로 각광을 받고 있다. 유니버스론자들이 본다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으면서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생활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러나 메타버스를 꿈꾸는 노마드들은 마약보다 강력한 다이놀핀의 경험을 하게 된다. 모르핀의 200배 효과가 있다고도 하는 다이놀핀이 뿜어져 나오게 하는 메타버스에서는 배고픔도, 고민도, 미래의 두려움도 없다. 직장이나 집, 돈, 경쟁이라는 유니버스의 생존조건을 무시하거나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가치가 메타버스노마드들의 삶을 이끈다.
스타트업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시장이기도 하다. 기존 유니버스에 특화된 기업이 진입하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하다. 메타버스 영역과 메타버스노마드의 철학적, 시대적 탄생원인과 특성을 먼저 읽어내 보자. AR, VR, 아바타가 메타버스의 모든 것이 아니다. 메타버스노마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해결해 주고, 유니버스와 메타버스를 연결하는데 스타트업은 강력한 힘을 가졌다. 스타트업 자체가 바로 메타버스이기 때문이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hnawool@gmail.com
발행일 : 2023-03-23 16:00 지면 : 2023-03-24 27면
동전을 100번 던졌을 때 앞면이나 뒷면이 지나치게 많이 나올 확률은 16% 이하다. 반면에 앞뒤가 비슷하게 나올 확률은 68% 정도다. 이를 수학에서는 정규분포라 정의한다. 100명의 조직원 가운데 천재와 바보가 각 16명, 평균을 이루는 보통 사람이 68명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대에 따라 나누는 기준이야 어떻든 천재, 바보, 보통 사람 비율은 항상 균형을 이루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정규분포 구조를 잘못 이해하면 16%의 천재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게 된다. 실제 많은 이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소수 한두 명의 혁신을 통해 인류사회가 발전을 이루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일 뿐 진실은 아니다.
인류의 위대한 점은 68%에 해당하는 보통 사람들이 천재들의 새로운 제안을 받아들여서 진화한다는 점에 있다. 이는 평균값이 쉬지 않고 미래를 향해 이동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수의 천재가 새로운 이론을 창출해 내지만 이들의 역할은 68%의 대중이 갖는 평균값을 이동시킬 뿐이다. 다른 말로 천재들이 아무리 앞선 이야기를 하더라도 대중이 따라가지 못하면 인류 발전은 없다는 얘기다. 천재들의 평균 이동 요청에 보통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인류의 진정한 진화요, 혁신이다.
결국 혁신의 완성은 천재들의 아이디어를 대중이 새로운 평균값으로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렸다. 이것이 대중의 힘이다. 기업의 혁신도 경영자의 특별한 생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진보적인 사업 아이템이라 해도 좁게는 임직원, 넓게는 소비자인 대중이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평균값 범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면 실패한 도전이 된다.
사전적으로 혁신이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등을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라 정의된다. 그러나 혁신이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시장에서 남발되고, 이상적 구호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 사회학적으로 혁신의 구체적 목표와 방법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정규분포를 통해 기업혁신을 바라보면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제안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소비자가 동의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평균값이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의 반응과 호응, 즉 평균 이동 없이 온전한 기업혁신은 없다. 창의성을 띤 경영자 또는 조직이 혁신을 비전 제시나 홍보용으로 내세울 수는 있지만 실제 대중의 동의 없이는 혁신은 없다.
스타트업은 혁신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명확한 목표와 메커니즘 없이 진정한 스타트업의 혁신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제 스타트업이 혁신을 실천할 명확한 목표 제시가 필요하다. 바로 '대중 평균값의 이동'이다. 현재 대중의 68%가 갖는 평균값을 스타트업이 이끌기 원하는 새 시대의 새로운 평균값으로 이동시키기 것이 바로 혁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만일 기업이 새로운 평균으로의 이동 노력을 포기하고 기존 대중의 평균값 맞추기에 급급한다면 아무리 참신한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혁신이라 할 수 없다.
이 혁신의 대표적 지표가 바로 핵심성과지표(KPI)다. 미래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KPI로 68%의 대중 평균이 눈에 띄게 이동하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면 혁신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KPI를 추출하는 과정이 바로 린스타트업 메커니즘이다. 이제 '이것이 대중의 평균값을 이동시킬 수 있는가?'라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질문을 통해 구체적이고 치밀한 혁신을 추진함으로써 팬데믹과 전쟁이라는 이 어려운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진정한 스타트업의 혁신을 보여 주기 바란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anwool@gef.kr
발행일 : 2023-02-09 18:00 지면 : 2023-02-10 27면
기업이나 상품에 스토리를 입히는 전략이 있다. 스토리를 통해 고객에게 설득력을 높여 구매를 유발한다. 브랜드나 값비싼 CF 모델을 쓰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모델의 스토리가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그러나 멋지고 설득력 있는 스토리에도 최근 시장에서는 이런 유의 성공을 자신하기가 어렵다. 이는 기업이 만들어 낸 인위적 스토리를 강제 주입하는 매스마케팅 시대가 저물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래지향적 스타트업이 해야 할 일은 고객의 스토리를 읽는 리터러시(문해력)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대중에게 기업 스토리를 주입하기보다 오히려 고객의 스토리를 기업이 읽는 능력이 바로 고객에 대한 문해력이다. 이제는 문해력을 길러서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고객의 스토리를 읽어 내기 위한 최우선적 요소는 바로 '데이터'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스토리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닫기마이데이터: 정보 주체인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적극 관리·통제하고, 이를 신용관리·자산관리·건강관리 등 개인 생활에 능동 활용하는 일련의 과정상세보기▶마이데이터·메타버스, 심지어 헬스케어 사업까지 모두 고객의 스토리를 읽어 내기 위한 데이터 기반 디지털전환(DX) 산업이다.
특히 개성을 중시하는 신세대 대상 마케팅에는 마이데이터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수의 고객으로부터 수집한 데이터 통계로 만들어지는 빅데이터는 시장의 평균값을 제시하고 트렌드를 예측한다지만 시장을 앞서가는 창의성 면에서 약점이 있다. 특히 빠른 변화가 있는 소비, 기호 등의 변화에는 뒤늦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보수적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개인맞춤형 치료나 개인 헬스케어를 위한 마이데이터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을 정도다.
고객의 스토리를 읽기 위해서는 고객 데이터 확보와 더불어 프로파일링 역량이 필요하다. 고객의 데이터를 서로 연결해서 고객의 스토리를 해석하는 프로파일링 지능이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기술은 당연히 AI이다. 이와 함께 고객의 스토리를 화면, 영상, 이미지 등으로 구체화하는 기술이 메타버스이며, 고객의 스토리를 읽고 지속 가능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보상을 지급하는 임팩트금융시스템이 M2E(참여보상)나 가상화폐 기술이다.
앞으로 고객의 스토리를 읽는 리터러시 기술, 즉 공감 능력을 갖춘 기업이 21세기 선도 기업이 될 것이다. 구글·네이버·카카오는 국내외 고객의 스토리를 읽고 있는 대표 기업이다. 비록 헬스 분야를 아우르지 못하고 있고, AI의 급성장과 중개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한계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앞으로 몇 년은 거뜬히 지금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유다.
반면에 리터러시 능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데이터 발굴(mining)과 데이터 모음(gathering)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매스) 마케팅, 매스미디어, 대중광고는 기업의 스토리를 전달할 수는 있어도 더 이상 고객의 스토리를 읽어 들이지는 못한다. 이제 스타트업에 '매스'(mass)라는 단어는 잊어야 할 과거 유산이다. 참신하고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스타트업 자체가 무작위적 대중(mass)을 대상으로 마케팅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철저하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개개인의 스토리를 읽어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DX의 최종 목표다. 스몰데이터로 프로파일링 된 고객의 스토리는 빅데이터와 결합해 팬덤인 새로운 대중(Crowd-based)을 탄생시킨다. 새로운 대중을 상대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생존 전략이자 운명이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anwool@gef.kr
발행일 : 2022-12-22 18:00 지면 : 2022-12-23 27면
시장 선택전략에서 국내 마케팅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전설적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노비드 샴푸다. 노비드는 비듬방지 샴푸로 포지셔닝돼 마트에서 팔리면서 대히트한 LG생활건강의 효자상품이다. 반면에 유사한 기능의 해외 유명 경쟁사 제품은 비듬제거 샴푸로 포지셔닝, 약국에서 판매됐다. 이 두 제품의 경쟁은 시작점에서부터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나뉘는 게임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비드의 시장 선택이 매우 당연하고 쉬워 보이지만 사실 기업이 진입하려는 시장 영역을 선택할 때는 쉽지 않은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다. 비듬제거 기능성 샴푸인 노비드도 타기팅되고 세분화된 비듬제거 샴푸 시장에 진입하려는 유혹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마케팅 교과서나 심지어 사업 경험이 적은 투자자·컨설턴트·금융기관이 제시하는 진입 시장은 대부분 분자(分子, 목표시장)가 작은 진입 시장을 우선 추천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타트업에도 분자가 큰 사업은 매력적이지 못할 수 있다. 대기업이나 전통적 산업 생태계가 이미 구축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세분화한 시장, 타기팅된 시장, 니치마켓에 진입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업 초기 사업계획 단계에서 블루오션을 찾으라거나 틈새시장을 노리라는 주문을 많이 받게 된다. 사실 노비드도 LG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에 비듬제거라는 작은 시장보다는 비듬방지라는 큰 시장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새로운 시장에 새로운 룰을 만드는 시대가 왔다. 단연코 지금은 스타트업이 틈새시장, 즉 어려운 시장에서 승부를 겨룰 필요가 없다. 새로운 게임 룰을 만드는 시장에 틈새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네이버와 다음카카오가 대기업을 제치고 성공한 것임을 복기해야 한다.
이와 함께 새로운 영역이 열리는 시장에는 굳이 극 타깃 층을 노릴 필요도 없다. 대표적으로 펫산업, 헬스케어 산업, 디지털치료제(DTx) 산업처럼 새로이 열리는 시장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 사업군에는 대기업도 구글 같은 중개 플랫폼 기업도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력이 있던 산업 데이터도 부족한 건 마찬가지 상황이다. 한마디로 경쟁사가 없다. 오히려 새로운 룰이 만들어지는 이 시장은 기득권 기업이 들어오기에는 리스크가 크고, 계륵과 같은 회색 영역 시장이며, 비즈니스 모델이 불확실한 특징이 있다. 이미 대기업화된 혁신형 기업 카카오나 네이버마저도 기존 성공 요인을 중심으로 확장하기 때문에 새로운 게임에서는 선도주자가 되기 어렵다. 한마디로 새로운 게임 룰이 지배하는 시장에는 선배기업들의 시장 전개 전략과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제 타깃 마케팅, 극 타깃 층, 틈새시장은 기존 기업들의 생존전략이지 스타트업 생존전략은 아니다. 10년 넘게 스타트업 심사를 하다 보면 필자가 매우 우수하다고 선택한 기업들은 항상 3등 정도에 머무른다. 조금만 리터치하면 크게 될 아이템인데 이상하게도 다른 심사위원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내가 그만큼 보는 눈이 없거나 감각이 떨어진 것은 아닌지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타 심사위원들과 나와의 관점 차이점을 알게 됐다. 바로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한 틈새로서의 가치로 기업을 보느냐 새로운 게임 룰을 만들 수 있는 기업으로서의 가치로 스타트업을 보느냐의 차이였던 것 같다.
이제 당당히 말하고 싶다. “스타트업에 분자는 혁신이 아니다. 분모가 혁신이어야 한다.” 기존 시장에서의 분자 혁신은 대기업이나 기존 기업의 몫이다. 스타트업은 분모에 혁신을 둬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게임 룰을 창출해 내는 스타트업만이 유니콘 기업으로 될 수 있다. 내가 만든 게임 룰에서 승자가 돼야 한다. 바둑 시장에서는 오목 게임, 오목 시장에서는 알까기 게임을 만들어 보자. 알까기 게임에 사회적 의미를 주입하고, 보상을 제공하며, 팬덤을 일으킨다면 새로운 분모 영역이 창조될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 스타트업의 생존전략이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anwool@gef.kr
발행일 : 2022-11-24 18:00 지면 : 2022-11-25 27면
혹자들은 기업가와 경영자, 관리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를 단순히 경영자라 하지 않는다. 엄연히 우리는 이들을 기업가라 부른다. 후대들은 이들을 최고 기업가로 칭송하고 그들의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배우려 노력하고 있다. 이렇듯 이 세 유형의 CEO들은 엄연히 구분되고 있으며, 구분할 필요가 있다.
관리자는 차가운 머리와 차가운 가슴을 가진 CEO다. 기존 사업 영역을 최대한 지키는 데 최적화된다. 성과관리·원가절감·사업운영에서 보수적이며, 안전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구조조정을 할 때나 영업관리를 할 때 수치와 효율성을 우선한다.
경영자는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가진다. 열정 페이로 뭉쳤던 창업 초기 과정을 거친 후 사업이 성장단계로 넘어서면서 새로운 분야의 사업을 하고 싶지만 차가운 머리로 절제하고, 기존 사업과 융합될 사업을 우선으로 확대하는 노력을 한다. 오너십과 경영을 병행하는 CEO나 PEF 등 펀드에서 회사를 인수하고 외부로부터 초빙해 오는 최고책임자는 대표 경영자들이다. 경영자들은 주어진 자원 내에서 최적의 성과를 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다만 신규사업에 대한 열정과 상상력이 부족해서 다른 분야로 투자하는 사업마다 실패하거나 아예 사업의 융·복합이나 퀀텀점프를 포기하고 예술, 골프, 등산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면서 경영적 자질을 높이려 한다.
반면에 기업가들은 퀀텀점프, 즉 하이퍼 경영을 한다. 항상 남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시장을 상상하고, 개척하는 먼 곳에 눈이 가 있다. 그래서 텐션이 늘 높다. 일반인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곤 한다. 상식적으로 셈법에 맞지도 않고, 시장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결정들이다. 이들은 머리도 뜨겁고 가슴도 뜨겁다. 기업가들은 구조조정을 해도 매출·이익·원가를 통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미래비전이 없다면 수익이 나더라도 과감히 사업을 접기도 한다. 관리자나 경영자와는 다른 구조조정 방식이다. 반면 수익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투자자나 시장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애플의 잡스가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해임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도 최고경영자를 넘어 최고기업가 탄생이 필요하다. 정주영과 이건희로 대표되는, 훌륭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최고기업가가 나와야만 한국경제의 미래가 밝을 것이다. 미-중 갈등, 반세계화, 팬데믹, 높아지는 인건비, 뒤따르는 신흥국으로 걱정만 할 게 아니다. 규모나 기업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유니콘 기업이나 글로벌을 전제로 하는 팁스 기업에만 종속돼서는 안 된다. 최고기업가 탄생은 유니콘 그 이상의 가치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몇 안 되는 유니콘 기업 가운데 애플의 잡스나 현대의 정주영과 같은 최고기업가가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이제 스타트업을 바라볼 때 아이템, 혁신성, 기업가치를 넘어 스타트업 속에 우리 국가와 미래를 짊어지고 갈 최고기업가 자질을 갖춘 기업가정신과 철학·혁신적 역량을 보유한 경영자가 존재하는지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와 함께 최고기업가가 탄생할 수 있는 정부의 지원정책이 제대로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는지도 한번 살펴봐야 하는 시점이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anwool@gef.kr
행일 : 2023-07-13 16:00 지면 : 2023-07-14 27면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X(디지털전환), DTx(디지털치료제), 디지털헬스케어, 디지털웰니스, 빅데이터·AI 등은 모두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이다. 반면 정보화전환, 전자약, 사물인터넷(IoT), 정보데이터 등은 정보기술(IT)이라는 수식어가 숨겨져 있다. 그럼 우리는 IT와 디지털을 제대로 구분하고 있을까? IT와 디지털은 당연히 상호 높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칫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면 전략수립이나, 비즈니스모델링,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큰 오류를 일으키게 된다.
개인맞춤형 화장품을 예로 들어보자. 정확도가 높은 피부측정 IT진단기기로 고객의 현재 피부상태를 측정하고 맞춤형 화장품을 제조해 주는 IT기반 사업모델이다. 그러나 피부측정 IT진단기기를 우리는 디지털기기라 부르지는 않는다. 측정수치를 아날로그 눈금표시에서 디지털숫자로 표현한다고 디지털기기는 아니다.
피부측정 IT진단기기의 정확도가 아무리 높더라도 오늘 측정한 피부상태가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피부상태는 환경이나 체질, 주생활 장소, 습관 등에 의해 변화하기 때문이다. 즉, 피부측정값의 방향, 정도와 빈도 등을 측정하는 데이터 변화 값을 확보하고, 분석해야 제대로 된 맞춤형 화장품이 탄생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화장품 원료라도 내 피부상태에 맞는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용에 있어 적정량과 적정 빈도 또한 중요하다. 이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시계열 데이터다. 피부노화의 방향, 피부변화의 속도와 변화량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측정하고 사용자의 환경, 심리, 습관 등에 대한 데이터가 결합된 결과에 맞는 원료가 배합된 화장품이 진정한 개인맞춤형 화장품이 된다.
이것이 IT와 디지털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IT가 서비스제공자나 기업 또는 측정자 주도의 시스템이라면, 디지털은 사용자나 고객, 피측정자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시스템이다. IT가 강도와 정확성이라는 횡단면분석에 중점을 둔다면 디지털은 사용자 데이터의 변화 즉, 시계열에 중점을 두게 된다. 결국 최근 대두되고 있는 Dx, DTx 등은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된 복합시계열분석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DX의 궁극적 목적은 개인맞춤형을 위한 유효성 있는 데이터 확보여야 한다. 개인맞춤형이 가능한 것은 시계열데이터가 축적되어 있다는 전제 위에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는 평균값이지 내 데이터는 아니다. 스몰데이터 또는 마이데이터가 빅데이터와 비교 분석될 때 개인맞춤형의 방향과 전략이 나오게 된다.
현재 정부는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 위원회를 구성, 전자정부에서 디지털정부로 패러다임 전환을 꾀하고 있다. DX는 디지털 정부로 전환에 궁극적 목표가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검색, 발급이 가능한 '정부 24' 서비스가 주요 골자인 전자정부에서 개인 세금 알림, 희망 기관 민원서류 자동전송, 개인 공지나 알람, 시뮬레이션 서비스 등 개인맞춤형 콘텐츠가 제공되는 것이 디지털정부의 핵심골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디지털정부의 핵심 또한 개인맞춤형이라 할 수 있다.
IT와 디지털을 구분하고, 분별하는 것은 스타트업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 최근 수많은 헬스케어 디바이스기업이 다양한 제품군을 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도나 편리성, 가격 등에 있어 우수 IT제품들은 많아 보이나 눈에 띄게 디지털 기반의 디바이스 즉, 데이터 중심의 제품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수백만원 하는 고가의 안마기나 치료기기들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매출액이 1000억원이 넘고, 수십 년간 수행해 오던 사업모델을 디지털중심으로 전환하라고 중견기업들에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도전임에 틀림없다. 반면에 혁신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스타트업에게는 기회가 된다. 차별화되고 지속가능한 시장진입과 성장을 위해서라면 고객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DX가 스타트업 비즈니스모델에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hnawool@gmail.com
발행일 : 2023-06-08 16:00 지면 : 2023-06-09 27면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사회가 다양화되고 다각화됨에 따라 개인이 누리는 자유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눈에 띄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상의 자유(다름), 기회의 자유(다양성), 표현의 자유(다채로움)로 표현된다. 다 같은 자유지만 자세히 보면 주체나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다채로움’이 개인을 중심으로 한 자유라면, ‘다양성’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자유다. ‘다름’은 국가나 인류사회적 가치 중심의 자유로 구분된다.
최근 신체적으로는 아직 남성이나 자신이 여성임을 주장하는 트랜스젠더가 여성탈의실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한 미국의 한 헬스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사례는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공동체의 가치의 충돌로 보인다. 성전환이라는 개인의 선택은 ‘다채로움’의 자유(free)이나 공동체에 있어서는 수천년간 내려온 전통법을 일시에 바꿔야 하는 갈등의 소지를 낳는다. 즉, 공동체가 갖는 ‘다양성’의 자유(freedom)와 개인의 자유가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퀴어 축제를 서울시청 광장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열어달라는 일부 단체의 요청이 있었다. ‘다채로움’을 누리는 이들의 자유를 인정하되, 공동체가 갖는 다양성의 자유도 존중해 달라는 의미였다고 볼 수 있다. 바로 보지 않을 권리다. 여성 탈의실에 아직 남성의 신체를 가진 성소수자를 거절할 수 있는 것은 공동체의 권리일 수 있다. 지나치게 개인의 다채로움을 내세워 인권과 권리, 개인의 자유만을 주장한다면 공동체의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 이미 사회가 인정하고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의 인권과 권리, 자유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동체가 갖는 ‘다양성’을 절대선으로 간주하고, 개인의 ‘다채로움’을 악으로 단정하는 것 또한 매우 위험한 집단주의적 사고다. 중요한 것은 개인과 공동체간 상호 존중이다. 공동체가 개인의 다채로움에 대한 자유를 존중하지 않으면 집단주의가 되기 쉽고, 반대로 개인이 공동체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기주의가 되기 쉽다. 서로 상대에 대한 배려없이 권리만 요구한다면 사회적 갈등은 무한 반복될 것이다.
물론 다채로움은 혁신을 부른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공동체의 가치이동을 부르는 새로운 도전정신이 항상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인류사회를 멈추지 않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혁신의 상징 ‘타다’ 서비스가 법적다툼을 끝내고 4년 만에 결국 법원으로부터 합법이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기업 입장에서야 이제 와서 통탄할 일이지만 앞서 자유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타다’는 적법성 여부를 떠나 대중교통이라는 공동체의 ‘다양성’을 위협하는 사업모델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타다’와는 달리 현재까지 유료로 운영되고 있는 ‘장애인 택시’ 서비스는 혁신의 ‘다채로움’이 공동체의 ‘다양성’과 어떻게 조화롭게 융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선례로 남게 되었다.
혁신의 아이콘 스타트업은 자신의 혁신을 사회가 도입하지 않는다고 투정 부릴 일도 아니다. 그러기 전에 스타트업의 ‘다채로운 혁신’이 어떻게 공동체의 ‘다양성’과 융합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스타트업의 아이템이 혁신적이더라도 공동체의 가치이동과 병행하는 노력이 없다면 이는 사회적으로 방해받고, 외면당하게 된다. 최근에는 사회적 불편함 해소를 앞세워 이익을 추구하던 기존 기업에 우리 사회는 공동체의 공동가치추구와 조화로움을 추가로 요구해 왔다. 대표적 지표가 바로 ESG다. ESG는 ‘상호 합의된 공동체의 가치를 사회다수가 참여하는 수단을 통해 투명하게 수행하라’는 21세기 인류사회가 기업에 주는 강력한 메시지다. ‘타다’의 판결을 환영하지만 다시 한번 이번 사례를 통해 스타트업이 혁신을 시장에 녹여 넣음에 ESG적 마음가짐과 지혜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hnawool@gmail.com
발행일 : 2023-06-22 16:00 지면 : 2023-06-23 27면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챗GPT 열풍이 거세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개념이 제시된 후 유행하던 사회적 현상과 비슷하다. 당시 갑자기 수많은 4차 산업혁명 전문가들이 나타나 조찬모임과 최고위과정, 특강, 출판 등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외쳤었다. 당시에 수많은 직업이 없어질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현재 우리 사회에는 커다란 혁신적 패러다임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세계관과 이를 이끄는 시대정신이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화두는 던졌으나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데 부족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생성형 AI’를 예로 들어보자. 많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들이 AI전문가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실제 지금 우리는 남이 만들어 놓은 AI의 룰(rule) 안에서 사용자로서 신기해하고 부러워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야 할 새로운 세계관과 이를 실천할 시대정신이다.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시대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웹 2.0의 탄생은 무수한 유니콘기업을 탄생시켰다.‘ESG’는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와 결합되어 무궁무진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새로운 세계관이 탄생하고, 이를 이끄는 시대정신이 제시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모습을 보며 패스트팔로워에 안주하는 수동적 행태를 이제는 반성해야 한다. 21세기 들어 20여년간 애플, 페이스북, 구글, 유튜브, 테슬라, 비트코인 등이 만들어낸 부와 가치를 우리는 알고 있다. 패러다임 시프트를 넘어 코어시프트를 이끄는 이 힘은 세상을 바라보는 메커니즘에 창의성이 결합됨으로써 새로운 영역을 창조한다. 대중미디어에서 1인 미디어 시대를 연 페이스북은 기존 미디어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놓은 대표주자다. 화석연료가 주를 이루던 교통수단을 전기차로 전환시킨 테슬라의 철학적 창의성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완성시켰던 애플의 잡스를 우리는 언제까지 부러워만 할 것인가?
이들의 혁신은 개선에 머무르지 않았다. 기존 시장에서 부족하고, 불편한 점을 개선한 혁신 수준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유니버스 차원을 넘어 메타버스를 창조해 냈다. 이 퍼스트무버들의 창의성을 빨리 도입하고 활용하기 위해 챗GPT 열풍에 동참하는 것을 말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챗GPT라는 생성성 AI를 창조해 낸 이들의 세계관과 시대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생성형 AI를 창조해 낸 퍼스트무버들은 인문철학적 기반 하에 고도의 창의성이 결합된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으로 시대정신을 만들어 냈다.
우리 사회가 고용창출이나 높은 매출과 수익을 스타트업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타트업들은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해 낼 수 있는 환경과 역량 그리고 다채로움과 다양성을 장점으로 갖고 있다. 개발자로 추측되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블록체인을 만들고 암호화폐를 보급할 때 던진 인문학적 화두는 ‘Decentralized’였다. ‘탈중앙화’ 또는 ‘탈공간화’로 해석되는 이 철학적 명제는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탄생시켰으며, ‘Decentralized’라는 이 시대정신이 있었기에 암호화폐 탄생의 정당성과 향후 나아갈 발전방향이 명확히 제시되었다. web 2.0의 참여, 공유, 개방의 시대정신은 이후 스마트폰, 페이스북, 유튜브, 우버 등 다양한 혁신비즈니스 모델을 탄생시켰다.
시대를 읽고 실천하는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시대적 맥락을 제대로 읽는 리터러시(문해력)가 요구된다. 더불어 사회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며 생성형 AI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메타인지 능력 또한 필요하다. 이들을 통해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시대정신이 제시된다. 모든 강력한 혁신 뒤에는 이 철학적 세계관과 시대정신이 숨겨져 있었다. 한국의 스타트업 중에서도 유니콘이란 규모의 목표에만 머무르지 말고 새로운 메타버스를 열 세계관과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창조적 패스트무버가 탄생하기를 바란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hnawool@gmail.com
발행일 : 2023-05-11 16:00 지면 : 2023-05-12 27면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현대인이 생존을 위한 살아가는 공간을 유니버스라고 한다. 한정된 공간의 질서유지를 위해 도덕적 원칙과 전통, 법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받게 된다. 매슬로우는 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 자기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로 유니버스에서 안전하게 행복하게 살기 위한 인간의 욕구를 정의내리고 있다. 공리주의, 국가와 사회, 가문 등은 공간 내에서 개인의 평안과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화(centralizing)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인간은 한정된 공간 내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을 강요받고, 공간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강요받아왔다. 더불어 공간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 노력하고, 1등과 성공을 거두는 제로섬 경쟁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역사시대 이후 2000년이 지날 즈음인 1950년 전후로 탈공간화(decentralizing)에 대한 시도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계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적으로는 민주화요구가 일기 시작했다. 미술의 경우 탈모더니즘(decentralizing)을 외치며 전위예술, 해체주의 예술이 탄생한다.
정보통신네트워크 기술은 개인마저도 고립된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게 만든다. 세계 어느 곳에 있는 이들과도 소통이 가능하게 되면서 재택근무나 여행의 자유를 넘어 온라인에서 커뮤니티와 팬덤이 만들어진다. 그들이 추구하는 그 무엇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탈공간화(decentralizing)된 새로운 영역이 탄생한 것이다. 이를 즐기고 누리는 이들을 디지털노마드(디지털유목민)이라 한다.
메타버스는 탈공간화(decentralizing)를 추구하는 디지털노마드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이다. 그들은 유니버스 속 공간의 질서를 강요받는 것을 답답해한다. 그들은 유니버스에서 필요하다고 배운 가치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 한다. 유니버스 속 세상 사람들이 보면 쓸데없어 보이는 가치일 수 있다.
대표적 메타버스로는 ‘게임’과 ‘오타쿠’ 영역을 넘어 최근에는 ‘캠핑’, ‘반려동물’ 영역을 들 수 있다. 운동과 자기만족이 결합된 바디프로필 영역도 새로운 메타버스의 가치로 각광을 받고 있다. 유니버스론자들이 본다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으면서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생활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러나 메타버스를 꿈꾸는 노마드들은 마약보다 강력한 다이놀핀의 경험을 하게 된다. 모르핀의 200배 효과가 있다고도 하는 다이놀핀이 뿜어져 나오게 하는 메타버스에서는 배고픔도, 고민도, 미래의 두려움도 없다. 직장이나 집, 돈, 경쟁이라는 유니버스의 생존조건을 무시하거나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가치가 메타버스노마드들의 삶을 이끈다.
스타트업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시장이기도 하다. 기존 유니버스에 특화된 기업이 진입하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하다. 메타버스 영역과 메타버스노마드의 철학적, 시대적 탄생원인과 특성을 먼저 읽어내 보자. AR, VR, 아바타가 메타버스의 모든 것이 아니다. 메타버스노마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해결해 주고, 유니버스와 메타버스를 연결하는데 스타트업은 강력한 힘을 가졌다. 스타트업 자체가 바로 메타버스이기 때문이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hnawool@gmail.com
발행일 : 2023-03-23 16:00 지면 : 2023-03-24 27면
동전을 100번 던졌을 때 앞면이나 뒷면이 지나치게 많이 나올 확률은 16% 이하다. 반면에 앞뒤가 비슷하게 나올 확률은 68% 정도다. 이를 수학에서는 정규분포라 정의한다. 100명의 조직원 가운데 천재와 바보가 각 16명, 평균을 이루는 보통 사람이 68명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대에 따라 나누는 기준이야 어떻든 천재, 바보, 보통 사람 비율은 항상 균형을 이루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정규분포 구조를 잘못 이해하면 16%의 천재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게 된다. 실제 많은 이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소수 한두 명의 혁신을 통해 인류사회가 발전을 이루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일 뿐 진실은 아니다.
인류의 위대한 점은 68%에 해당하는 보통 사람들이 천재들의 새로운 제안을 받아들여서 진화한다는 점에 있다. 이는 평균값이 쉬지 않고 미래를 향해 이동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수의 천재가 새로운 이론을 창출해 내지만 이들의 역할은 68%의 대중이 갖는 평균값을 이동시킬 뿐이다. 다른 말로 천재들이 아무리 앞선 이야기를 하더라도 대중이 따라가지 못하면 인류 발전은 없다는 얘기다. 천재들의 평균 이동 요청에 보통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인류의 진정한 진화요, 혁신이다.
결국 혁신의 완성은 천재들의 아이디어를 대중이 새로운 평균값으로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렸다. 이것이 대중의 힘이다. 기업의 혁신도 경영자의 특별한 생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진보적인 사업 아이템이라 해도 좁게는 임직원, 넓게는 소비자인 대중이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평균값 범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면 실패한 도전이 된다.
사전적으로 혁신이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등을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라 정의된다. 그러나 혁신이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시장에서 남발되고, 이상적 구호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 사회학적으로 혁신의 구체적 목표와 방법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정규분포를 통해 기업혁신을 바라보면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제안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소비자가 동의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평균값이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의 반응과 호응, 즉 평균 이동 없이 온전한 기업혁신은 없다. 창의성을 띤 경영자 또는 조직이 혁신을 비전 제시나 홍보용으로 내세울 수는 있지만 실제 대중의 동의 없이는 혁신은 없다.
스타트업은 혁신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명확한 목표와 메커니즘 없이 진정한 스타트업의 혁신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제 스타트업이 혁신을 실천할 명확한 목표 제시가 필요하다. 바로 '대중 평균값의 이동'이다. 현재 대중의 68%가 갖는 평균값을 스타트업이 이끌기 원하는 새 시대의 새로운 평균값으로 이동시키기 것이 바로 혁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만일 기업이 새로운 평균으로의 이동 노력을 포기하고 기존 대중의 평균값 맞추기에 급급한다면 아무리 참신한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혁신이라 할 수 없다.
이 혁신의 대표적 지표가 바로 핵심성과지표(KPI)다. 미래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KPI로 68%의 대중 평균이 눈에 띄게 이동하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면 혁신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KPI를 추출하는 과정이 바로 린스타트업 메커니즘이다. 이제 '이것이 대중의 평균값을 이동시킬 수 있는가?'라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질문을 통해 구체적이고 치밀한 혁신을 추진함으로써 팬데믹과 전쟁이라는 이 어려운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진정한 스타트업의 혁신을 보여 주기 바란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anwool@gef.kr
발행일 : 2023-02-09 18:00 지면 : 2023-02-10 27면
기업이나 상품에 스토리를 입히는 전략이 있다. 스토리를 통해 고객에게 설득력을 높여 구매를 유발한다. 브랜드나 값비싼 CF 모델을 쓰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모델의 스토리가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그러나 멋지고 설득력 있는 스토리에도 최근 시장에서는 이런 유의 성공을 자신하기가 어렵다. 이는 기업이 만들어 낸 인위적 스토리를 강제 주입하는 매스마케팅 시대가 저물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래지향적 스타트업이 해야 할 일은 고객의 스토리를 읽는 리터러시(문해력)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대중에게 기업 스토리를 주입하기보다 오히려 고객의 스토리를 기업이 읽는 능력이 바로 고객에 대한 문해력이다. 이제는 문해력을 길러서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고객의 스토리를 읽어 내기 위한 최우선적 요소는 바로 '데이터'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스토리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닫기마이데이터: 정보 주체인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적극 관리·통제하고, 이를 신용관리·자산관리·건강관리 등 개인 생활에 능동 활용하는 일련의 과정상세보기▶마이데이터·메타버스, 심지어 헬스케어 사업까지 모두 고객의 스토리를 읽어 내기 위한 데이터 기반 디지털전환(DX) 산업이다.
특히 개성을 중시하는 신세대 대상 마케팅에는 마이데이터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수의 고객으로부터 수집한 데이터 통계로 만들어지는 빅데이터는 시장의 평균값을 제시하고 트렌드를 예측한다지만 시장을 앞서가는 창의성 면에서 약점이 있다. 특히 빠른 변화가 있는 소비, 기호 등의 변화에는 뒤늦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보수적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개인맞춤형 치료나 개인 헬스케어를 위한 마이데이터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을 정도다.
고객의 스토리를 읽기 위해서는 고객 데이터 확보와 더불어 프로파일링 역량이 필요하다. 고객의 데이터를 서로 연결해서 고객의 스토리를 해석하는 프로파일링 지능이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기술은 당연히 AI이다. 이와 함께 고객의 스토리를 화면, 영상, 이미지 등으로 구체화하는 기술이 메타버스이며, 고객의 스토리를 읽고 지속 가능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보상을 지급하는 임팩트금융시스템이 M2E(참여보상)나 가상화폐 기술이다.
앞으로 고객의 스토리를 읽는 리터러시 기술, 즉 공감 능력을 갖춘 기업이 21세기 선도 기업이 될 것이다. 구글·네이버·카카오는 국내외 고객의 스토리를 읽고 있는 대표 기업이다. 비록 헬스 분야를 아우르지 못하고 있고, AI의 급성장과 중개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한계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앞으로 몇 년은 거뜬히 지금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유다.
반면에 리터러시 능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데이터 발굴(mining)과 데이터 모음(gathering)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매스) 마케팅, 매스미디어, 대중광고는 기업의 스토리를 전달할 수는 있어도 더 이상 고객의 스토리를 읽어 들이지는 못한다. 이제 스타트업에 '매스'(mass)라는 단어는 잊어야 할 과거 유산이다. 참신하고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스타트업 자체가 무작위적 대중(mass)을 대상으로 마케팅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철저하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개개인의 스토리를 읽어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DX의 최종 목표다. 스몰데이터로 프로파일링 된 고객의 스토리는 빅데이터와 결합해 팬덤인 새로운 대중(Crowd-based)을 탄생시킨다. 새로운 대중을 상대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생존 전략이자 운명이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anwool@gef.kr
발행일 : 2022-12-22 18:00 지면 : 2022-12-23 27면
시장 선택전략에서 국내 마케팅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전설적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노비드 샴푸다. 노비드는 비듬방지 샴푸로 포지셔닝돼 마트에서 팔리면서 대히트한 LG생활건강의 효자상품이다. 반면에 유사한 기능의 해외 유명 경쟁사 제품은 비듬제거 샴푸로 포지셔닝, 약국에서 판매됐다. 이 두 제품의 경쟁은 시작점에서부터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나뉘는 게임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비드의 시장 선택이 매우 당연하고 쉬워 보이지만 사실 기업이 진입하려는 시장 영역을 선택할 때는 쉽지 않은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다. 비듬제거 기능성 샴푸인 노비드도 타기팅되고 세분화된 비듬제거 샴푸 시장에 진입하려는 유혹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마케팅 교과서나 심지어 사업 경험이 적은 투자자·컨설턴트·금융기관이 제시하는 진입 시장은 대부분 분자(分子, 목표시장)가 작은 진입 시장을 우선 추천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타트업에도 분자가 큰 사업은 매력적이지 못할 수 있다. 대기업이나 전통적 산업 생태계가 이미 구축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세분화한 시장, 타기팅된 시장, 니치마켓에 진입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업 초기 사업계획 단계에서 블루오션을 찾으라거나 틈새시장을 노리라는 주문을 많이 받게 된다. 사실 노비드도 LG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에 비듬제거라는 작은 시장보다는 비듬방지라는 큰 시장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새로운 시장에 새로운 룰을 만드는 시대가 왔다. 단연코 지금은 스타트업이 틈새시장, 즉 어려운 시장에서 승부를 겨룰 필요가 없다. 새로운 게임 룰을 만드는 시장에 틈새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네이버와 다음카카오가 대기업을 제치고 성공한 것임을 복기해야 한다.
이와 함께 새로운 영역이 열리는 시장에는 굳이 극 타깃 층을 노릴 필요도 없다. 대표적으로 펫산업, 헬스케어 산업, 디지털치료제(DTx) 산업처럼 새로이 열리는 시장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 사업군에는 대기업도 구글 같은 중개 플랫폼 기업도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력이 있던 산업 데이터도 부족한 건 마찬가지 상황이다. 한마디로 경쟁사가 없다. 오히려 새로운 룰이 만들어지는 이 시장은 기득권 기업이 들어오기에는 리스크가 크고, 계륵과 같은 회색 영역 시장이며, 비즈니스 모델이 불확실한 특징이 있다. 이미 대기업화된 혁신형 기업 카카오나 네이버마저도 기존 성공 요인을 중심으로 확장하기 때문에 새로운 게임에서는 선도주자가 되기 어렵다. 한마디로 새로운 게임 룰이 지배하는 시장에는 선배기업들의 시장 전개 전략과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제 타깃 마케팅, 극 타깃 층, 틈새시장은 기존 기업들의 생존전략이지 스타트업 생존전략은 아니다. 10년 넘게 스타트업 심사를 하다 보면 필자가 매우 우수하다고 선택한 기업들은 항상 3등 정도에 머무른다. 조금만 리터치하면 크게 될 아이템인데 이상하게도 다른 심사위원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내가 그만큼 보는 눈이 없거나 감각이 떨어진 것은 아닌지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타 심사위원들과 나와의 관점 차이점을 알게 됐다. 바로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한 틈새로서의 가치로 기업을 보느냐 새로운 게임 룰을 만들 수 있는 기업으로서의 가치로 스타트업을 보느냐의 차이였던 것 같다.
이제 당당히 말하고 싶다. “스타트업에 분자는 혁신이 아니다. 분모가 혁신이어야 한다.” 기존 시장에서의 분자 혁신은 대기업이나 기존 기업의 몫이다. 스타트업은 분모에 혁신을 둬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게임 룰을 창출해 내는 스타트업만이 유니콘 기업으로 될 수 있다. 내가 만든 게임 룰에서 승자가 돼야 한다. 바둑 시장에서는 오목 게임, 오목 시장에서는 알까기 게임을 만들어 보자. 알까기 게임에 사회적 의미를 주입하고, 보상을 제공하며, 팬덤을 일으킨다면 새로운 분모 영역이 창조될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 스타트업의 생존전략이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anwool@gef.kr
발행일 : 2022-11-24 18:00 지면 : 2022-11-25 27면
혹자들은 기업가와 경영자, 관리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를 단순히 경영자라 하지 않는다. 엄연히 우리는 이들을 기업가라 부른다. 후대들은 이들을 최고 기업가로 칭송하고 그들의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배우려 노력하고 있다. 이렇듯 이 세 유형의 CEO들은 엄연히 구분되고 있으며, 구분할 필요가 있다.
관리자는 차가운 머리와 차가운 가슴을 가진 CEO다. 기존 사업 영역을 최대한 지키는 데 최적화된다. 성과관리·원가절감·사업운영에서 보수적이며, 안전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구조조정을 할 때나 영업관리를 할 때 수치와 효율성을 우선한다.
경영자는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가진다. 열정 페이로 뭉쳤던 창업 초기 과정을 거친 후 사업이 성장단계로 넘어서면서 새로운 분야의 사업을 하고 싶지만 차가운 머리로 절제하고, 기존 사업과 융합될 사업을 우선으로 확대하는 노력을 한다. 오너십과 경영을 병행하는 CEO나 PEF 등 펀드에서 회사를 인수하고 외부로부터 초빙해 오는 최고책임자는 대표 경영자들이다. 경영자들은 주어진 자원 내에서 최적의 성과를 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다만 신규사업에 대한 열정과 상상력이 부족해서 다른 분야로 투자하는 사업마다 실패하거나 아예 사업의 융·복합이나 퀀텀점프를 포기하고 예술, 골프, 등산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면서 경영적 자질을 높이려 한다.
반면에 기업가들은 퀀텀점프, 즉 하이퍼 경영을 한다. 항상 남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시장을 상상하고, 개척하는 먼 곳에 눈이 가 있다. 그래서 텐션이 늘 높다. 일반인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곤 한다. 상식적으로 셈법에 맞지도 않고, 시장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결정들이다. 이들은 머리도 뜨겁고 가슴도 뜨겁다. 기업가들은 구조조정을 해도 매출·이익·원가를 통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미래비전이 없다면 수익이 나더라도 과감히 사업을 접기도 한다. 관리자나 경영자와는 다른 구조조정 방식이다. 반면 수익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투자자나 시장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애플의 잡스가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해임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도 최고경영자를 넘어 최고기업가 탄생이 필요하다. 정주영과 이건희로 대표되는, 훌륭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최고기업가가 나와야만 한국경제의 미래가 밝을 것이다. 미-중 갈등, 반세계화, 팬데믹, 높아지는 인건비, 뒤따르는 신흥국으로 걱정만 할 게 아니다. 규모나 기업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유니콘 기업이나 글로벌을 전제로 하는 팁스 기업에만 종속돼서는 안 된다. 최고기업가 탄생은 유니콘 그 이상의 가치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몇 안 되는 유니콘 기업 가운데 애플의 잡스나 현대의 정주영과 같은 최고기업가가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이제 스타트업을 바라볼 때 아이템, 혁신성, 기업가치를 넘어 스타트업 속에 우리 국가와 미래를 짊어지고 갈 최고기업가 자질을 갖춘 기업가정신과 철학·혁신적 역량을 보유한 경영자가 존재하는지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와 함께 최고기업가가 탄생할 수 있는 정부의 지원정책이 제대로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는지도 한번 살펴봐야 하는 시점이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anwool@gef.kr
발행일 : 2023-09-06 16:00 지면 : 2023-09-07 26면
코로나19로 e커머스가 급성장하면서 2~3년전부터 '브랜드 어그리게이터'(Brand Aggregator)란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모델이 각광을 받았다. 아마존, 쇼피파이와 같은 거대 e커머스 플랫폼에서 소비자에게 인기가 많고 수익을 내고 있는 중소형 브랜드를 끊임없이 인수, 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극대화해 기업가치를 빠르게 끌어올리려는 회사를 의미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선두주자인 미국의 스라시오(Thrasio)는 200개 이상 브랜드를 인수, 2018년 사업을 시작해 불과 2년만에 4조 원이상 투자를 받으며 13조원의 기업가치로 데카콘기업이 됐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의 베를린 브랜드그룹과 레이저는 각각 1조 8000억원, 1조 5000억원, 미국의 퍼치도 1조 1000억원의 펀딩에 성공했으며 이들 모두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이외에도 수십개 회사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 투자를 유치했고, 어그리게이터는 투자자가 가장 선호하는 비즈니스모델로 떠올랐다. 국내에서도 신성장 산업으로 주목을 받으며 짧은 시간에 수십개 기업이 브랜드 어그리게이터 시장에 진입, 높은 기업가치로 자금을 확보했다.
하지만 천문학적 자금을 확보한 이후 8개월 만에 스라지오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으며 CEO는 해임됐다. 한 때 IPO를 추진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생존이 급급한 상황이다. 신기하게도 엄청난 자금을 모았던 다른 기업도 비슷한 형편에 놓여 있다. 안타깝게도 국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씨비인사이트에 따르면, 2021년 80여개 어그리게이터가 15조원의 자금조달에 성공했으나 올해에는 불과 5개 기업이 2000억 원을 유치하는데 그쳤다. 불과 얼마 전까지 '디지털 P&G'라는 찬사를 들으며 승승장구했던 e커머스 어그리게이터들은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시장에서 외면을 당하게 됐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제시됐지만 다수의 업체 난립으로 브랜드 인수 경쟁심화에 따른 인수가액 상승, 지나치게 낮은 진입장벽, 차별화 전략 실패, 팬데믹 기간에 급성장했던 시장의 급격한 냉각 등이 실패의 주원인으로 지적됐다. 또 속도를 중시하며 매주 2~3개 브랜드(셀러)를 인수했지만 정작 내부통제, 컴플라이언스, 인수 후 통합 작업은 전무했으며,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눈에 띄는 엑시트 성공사례가 없었다는 것이다. 천문학적 돈을 투입했지만 회수를 못하니 투자자들은 추가 투자를 멈췄고, 결국 대부분 어그리게이터가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사실 어그리게이터는 그럴듯한 전략을 표방했지만, 혁신이나 규모의 경제가 아닌 전형적인 '금융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비즈니스모델이다. 규모가 작은 회사는 IPO가 쉽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낮은 기업가치로 쉽게 인수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금만 충분하다면 이익을 내고 있는 소형 브랜드를 수십 개, 수백 개 인수해 규모를 키우면, 매출이나 이익성장률이 높으면서도 엑시트도 가능한 회사로 쉽게 포장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저금리의 산물이었던 어그리게이터는 이자율 상승, 경기 침체, 전자상거래 역성장이라는 삼중고를 겪으며 일장춘몽으로 사라지는 분위기다. 엔데믹으로 오프라인 매장이 다시 문을 열자 e커머스 시장은 정체되고 대부분 소규모 브랜드 가치가 급락했고, 아울러 어그리게이터의 기업가치도 폭락했다.
이로 인해 생존을 위해 대부분 인력을 내보내고, 비용을 급격히 줄이고 마침내는 비즈니스의 핵심인 브랜드 인수를 포기하고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면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 됐다. 지난 주에도 미국의 베니타고 그룹이 파산신청을 했고, 독일의 셀러엑스가 미국의 엘리베이트 브랜드를 인수하는 등 계속해 문을 닫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으며 동시에 어그리게이터간 합종연횡도 증가하고 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망 중소 브랜드의 육성과 엑시트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어그리게이터는 스타트업에게는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지금이야 말로 브랜드 어그리게이터가 추구했던 진정한 규모의 경제와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혁신적 사업모델이 절실하다. 우리나라에서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
발행일 : 2022-12-28 18:00 지면 : 2022-12-29 26면
세계적으로 주식시장과 벤처투자 시장이 역사 이래 최고 활황을 누린 2021년 미국에서는 500만개 이상의 신규 회사가 만들어지고, 그 가운데 약 2만개의 스타트업이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고 200여개사가 상장됐다.
사상 최고라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은 투자를 전혀 받지 못하고 사라졌다.
또한 투자를 받았다 하더라도 중간에 도산하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엑시트를 해야 한다. 올해에는 투자시장 위축으로 불과 20~30개 스타트업만이 상장됐다.
투자를 받았건 받지 못했건 스타트업은 반드시 엑시트를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또한 투자자도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지인들로부터 받은 엔젤투자를 포함해 한 번이라도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엑시트하는 확률은 0.1%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를 받지 못한 99.9%의 스타트업은 M&A를 통해 엑시트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적은 숫자의 기업만이 투자를 유치하고, 그 가운데 극소수가 코스닥 상장을 통해 엑시트한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과 다른 점은 M&A를 통한 엑시트가 극히 적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모든 스타트업이 기업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M&A에 나서기 때문에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되어 있고, M&A에 소극적인 우리나라 생태계는 건전하게 선순환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회 스타트업 연구모임 유니콘팜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공동개최한 '공정위 M&A 심사기준 강화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칠 영향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준비 중인 플랫폼기업 M&A 심사기준 강화 방안이 스타트업 생태계와 플랫폼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 간 보완성 및 대체성이 없는 기업결합을 뜻하는 '이종혼합 기업결합'에 대해 기존 간이심사를 하던 것을 원칙적 '일반심사'로 전환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공정위의 기업결합 규제 강화 방침은 이른바 '문어발식 확장'으로 불리는 카카오, 네이버 등 대형 IT 플랫폼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견제하려는 성격이 짙다.
하지만 이번 규제의 배경이 된 카카오 먹통 사건은 독과점 문제나 시장지배력 문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이슈이다. 이러한 조치가 가뜩이나 저조한 M&A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이는 플랫폼 산업 위축, 스타트업 생태계 혼란, 일자리 창출 억제, 국민 편익에 부정적으로 작용될 것이다.
'기술은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 기술에 대해 충분히 잘 아는 전문가지만 안타깝게도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과 기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정책을 수립하고 관리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 의해 지배된다'라는 유명한 '퍼트 법칙'(Putt's Law) 이 있다. 아치볼드 퍼트가 쓴 '퍼트 법칙과 성공적인 경제관료'(Putt's Law and the Successful Technocrat)에 나오는 내용이다. 퍼트 법칙은 기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기업 또는 국가의 각종 프로젝트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에도 흔히 나타난다. 현실적으로 관리자가 전문가만큼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명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두 집단 간 격차를 좁힐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책 방향이 모호하지 않고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또한 끊임없는 의사소통을 통해 모든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권자가 자신의 무지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서 잘 모르는 부분을 피해 가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연간 20만개 이상의 기술창업이 생겨나는데 올해 신규 상장한 회사는 코스피 3개, 코스닥 62개에 그쳤다. 그 중 일부가 스타트업이다. 나머지 20만개에 달하는 회사의 유일한 엑시트는 M&A다. IPO는 아주 적은 숫자의 회사만 가능하지만, M&A는 무한대로 일어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나 비즈니스모델을 필요로 하는 대기업, 우수인재를 필요로 하는 중견기업, 상호보완적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들 모두를 승자로 만들 수 있다.
공정위에서 M&A가 불허되는 경우는 1년에 3건 안팎이고, 또한 심사 기준 전환이 스타트업의 엑시트나 성장동력을 차단할 정도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고, 결과도 알 수 없다면 선뜻 나서서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배민-요기요 결합과 관련해서는 1년이나 시간을 끌었다. 심사결과도 시장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M&A 심사는 공정위의 재량이나 혁신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떠한 판정이 내려진다 해도 이를 견제할 부처가 없는 것도 현실이다. 기업결합 정책은 인수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엑시트 방법이 IPO와 M&A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국내 거대 플랫폼 기업의 확장을 막겠다고 장벽을 쌓으면 스타트업은 가장 강력한 엑시트 방안이 없어지는 것이다.
M&A는 적극 장려해야 한다. 오히려 M&A에 걸림돌이 되는 여러 가지 대못을 뽑아야 할 때다.
글로벌 시장총액 상위에 위치한 애플, 구글, 아마존, MS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은 M&A를 통해 성장해 왔고, 현재에도 활발히 우량 스타트업 발굴에 힘쓰고 있다. 플랫폼기업의 특성상 계속해서 비즈니스모델을 혁신하고 피벗해야 한다.
대기업이 모든 기술과 비즈니스모델을 직접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빅테크기업에는 상당히 많은 스타트업이 함께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경제활성화를 위해 스타트업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면서도 실제로 어떻게 하는 것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현실이다. 지금까지는 0.1%에 불과한 IPO 기업에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바람직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해 M&A를 해야 할 99.9%에 집중할 때다. 퍼트 법칙을 되새기며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혁신생태계에서 M&A는 생존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
발행일 : 2023-07-12 16:00 지면 : 2023-07-13 26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올해 상반기 미국 나스닥지수는 31.7% 급등하며 40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사상 처음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돌파한 애플, 생성AI 열풍에 올라탄 엔비디아 등 빅테크의 질주 덕분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메타, 아마존, 테슬라 등도 앞다퉈 주가를 끌어올렸다. 애플은 46.7% 상승해 시가총액 3조 달러(4024조 원) 돌파라는 새로운 금자탑을 세웠으며, 엔비디아는 무려 187%나 올랐다. 메타와 테슬라도 180%, 113%라는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메타(페이스북)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알파벳) 등 5개 종목을 의미하는 FAANG 주식은 코로나19 직후 한 때 미국 증시의 랠리를 이끈 주역이었으나, 이제는 그 자리를 '마그니피센트 7'이 차지했다. 마그니피센트7은 1960년 공개된 율 브리너, 스티브 매퀸 주연의 미국의 서부 영화 '황야의 7인(원제: 마그니피센트7)'의 2016년 리메이크 작품으로, 의기투합한 7인의 총잡이가 무법자들에게 약탈당하는 마을을 구출한다는 줄거리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상반기 미국 증시 강세장을 이끈 7개 기업을 마그니피센트7로 명명하며, 연일 경제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현실 세계의 황야의 7인은 애플,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알파벳, 테슬라, 아마존이 주인공이다. 이들 모두 가진 것없이 스타트한 혁신기업이며 전통적 레거시 기업은 하나도 없다. 이들 7개 종목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고금리, 지역은행 위기, 미국 정부의 부채한도 협상을 둘러싼 진통 등 숱한 악재를 돌파했다. 그러나 소형주 그룹인 러셀2000은 7% 상승에 그치며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보였다. 한편 국내 빅테크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코스피지수가 상반기 14% 상승하는 동안 네이버는 3% 상승에 그쳤고, 카카오는 오히려 7%이상 떨어졌다.
미국 벤처캐피털협회(NVCA)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에는 투자를 받은 기업의 약 10%정도만 대기업에 인수되었으나, 최근에는 약 90%가 M&A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0년동안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기업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IPO 수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결국 매년 수천 개의 스타트업이 대기업이나 관련 기업에 인수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황야의 7인은 일단 혁신적인 비즈니스 플랫폼을 만들고, 수십 년 동안 수백 개의 스타트업, 서브 플랫폼기업을 인수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전략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다. 분석해 보면 현재 사업보다 미래 유망분야에 훨씬 더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뛰어난 인재나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빠르게 인수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성장전략인 것이다. 유망기술이나 우수인력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먼저 확보하려면 회사 내부의 역량만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외부의 도움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메타가 2012년 인스타그램을 1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수익이 없는 작은 스타트업에 그렇게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기로 한 결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현재 130조원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는 인스타그램의 인수는 결과적으로 소셜 미디어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영리한 비즈니스 전략이었다. 또, 보잘것없던 유튜브를 2006년 2조 원의 기업가치로 인수해 조롱을 받았던 구글은 현재 200조원이 훨씬 뛰어넘는 기업가치로 유튜브를 키워냈다. 메타나 구글 모두 100배이상의 성과를 낸 것이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대를 지키기도 어려울 수 있다는 비관론이 계속되고 있다. 복합 위기에 봉착해 반등의 기미마저 찾기 어렵다. 이제는 몇몇 대기업의 수출실적에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도 혁신으로 무장한 세계를 호령할 황야의 7인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까지 혁신의 골든타임을 너무나 많이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그 어느때보다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 절실하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
발행일 : 2023-06-28 16:00 지면 : 2023-06-29 26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꿈의 직장으로 불리던 글로벌 빅테크기업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트위터, 메타가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자, 그 여파는 고스란히 우리나라에도 이어졌다. 빅테크 한국지사가 최근 권고사직으로 많은 인원을 줄인 것이다. 또한 벤처캐피털(VC)의 투자규모 축소로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국내 스타트업도 본격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심지어는 충분한 자금을 확보한 스타트업도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스타트업계가 혹한기를 맞고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빅테크의 구조조정과 스타트업의 구조조정은 근본적으로 결이 다르다. 빅테크의 시가총액은 1000조~3000조원에 달하며, 천문학적인 현금을 보유하고 있고, 탄탄한 비즈니스모델로 앞으로도 상당기간 회사의 수익성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코로나19 시기에 엄청나게 늘렸던 인원의 일부를 줄이는 것이다. 부자 몸조심하는 격이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생존이 걸린 문제다. 매출도 거의 없고, 당장 쓸 돈도 바닥났고, 비즈니스모델도 아직 미완성이다. 대부분 스타트업은 사업을 시작하고 상당기간 적자가 지속된다. 스타트업은 시작하는 것보다 생존하고 스케일업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스타트업은 대부분 매출이 없거나 아주 적다. 돈을 빌리기 위해 필요한 담보여력도 없어, 투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수익을 내고 자립할 때까지 여러 번의 투자유치가 이뤄져야 한다. 보통 1~2년 정도 운영할 수 있는 투자를 받고, 정해진 목표가 달성되면 밸류에이션을 높여서 다시 자금을 유치하는 사이클을 반복한다.
런웨이는 활주로라는 뜻인데, 비행기가 활주로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이륙해야 한다는 점에 착안해 스타트업계에서는 현재 보유한 자금이 소진되기까지의 기간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런웨이는 스타트업의 생존 가능 기간을 말한다. 런웨이가 6개월이란 말은, 6개월 후에는 회사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문을 닫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런웨이가 끝나기 전에 다음 라운드를 준비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자금을 너무 빨리 소진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반대로 너무 천천히 사용하면 성장 속도가 더뎌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적정 수준의 런웨이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비행기가 안전하게 이착륙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활주로가 필요하다. 활주로의 길이는 비행기의 크기와 무게에 따라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스타트업을 키우고 성공적인 엑시트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금액과 자금의 소진 속도는 스타트업의 비즈니스모델과 어느 단계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과 같이 투자시장이 경색되면 목표대로 회사가 잘 성장하고 있었더라도 다음 라운드에서 자금을 확보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런웨이가 갑자기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생존을 위해 어떻게든 런웨이를 최대한 늘리려고 한다. 일단 사람과 비용을 줄이고 연구개발을 중단하고 신규사업을 접고, 일단 살고 봐야 한다. 버텨야 한다 등 전문가들의 조언도 쏟아진다.
런웨이를 늘리기 위해서는 매출과 이익을 늘리든지 비용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매출이 미미하기 때문에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거나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신규사업이나 연구개발을 축소하게 된다. 그러면 회사의 미래가치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시장과 투자자들의 관심대상에서 멀어지게 된다. 좀비기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서는 활주로만이 아니고 유능한 조정사와 추진 동력이 있어야 한다. 버티면 과연 다시 기회가 올까.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 위대한 스타트업의 탄생을 기대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
발행일 : 2023-04-19 16:00 지면 : 2023-04-20 26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끊임없이 쏟아지는 신기술로 많은 종류의 직업이 사라진다 해도 결코 인간 고유의 창의성은 기계나 기술이 대신할 수 없음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마치 엄청난 지식을 갖춘 인간과 직접 이야기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챗GPT', 텍스트와 사진을 입력하면 텍스트 내용과 일치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달리(DALL-E) 2', 텍스트와 음성 샘플을 입력하면 텍스트 내용을 음성으로 변환하는 '발리'(VALL-E)와 같이 최근 등장한 생성 인공지능(AI)은 인간의 창의 영역도 더 이상 안전지대는 아닐 거란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오픈AI와 펜실베이니아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성 AI는 회계사, 수학자, 코딩전문가, 통역사, 작가의 직업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고, 홍보 전문가, 법원 속기사, 블록체인 엔지니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생성 AI는 새로운 콘텐츠를 아주 빠른 시간에 무한하게 생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성 AI가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에 수반되는 위협과 도전을 이해해야 한다. 예상된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부분 기업이 생성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더 빠르고 더 높은 생산성 향상을 꾀하며, 절약된 시간을 생성된 정보를 수정하고 편집하는 데 할애할 것이란 시나리오다. 예를 들어 엄청난 양의 의료데이터를 활용하면 수술에 대한 조언과 정확한 진단을 돕는 정보를 생성해서 의료 전문가의 과중한 스트레스와 업무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다. 또한 디자이너, 영화 제작자, 광고 회사 임원이 직접 달리 2와 같은 이미지 생성 AI로 전문가 도움 없이 필요한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다. 이 시나리오는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강화해 더 빠른 속도와 효율성으로 더 높은 혁신 세계로 이끈다는 것이다.
둘째 지나친 알고리즘 경쟁과 부적절한 거버넌스가 인간의 창의성을 밀어낼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결과적으로 작가·프로듀서·크리에이터 대부분은 생성 AI 알고리즘으로 탄생된 콘텐츠 쓰나미에 익사하고, 극히 일부의 크리에이터만 생존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위기를 느낀 크리에이터는 끝없는 법정 다툼을 벌이게 된다. 예를 들어 저명한 생성 AI 플랫폼에 대한 대규모 저작권 침해를 주장한다. 문제는 지식재산권(IP) 관련 법이 아직은 AI의 기술적 진보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인센티브를 유지하면서 디지털 혁신으로 말미암은 국민에게 돌아갈 혜택과의 균형을 놓고 앞으로 수십 년을 허송세월할 가능성이 있다.
이 시나리오는 손쉽게 만들어진 생성 AI의 천문학적 결과물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려는 인간의 의욕을 꺾기 때문에 혁신이 사라질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이 된다.
셋째 AI기업에 이른바 기술 견제 현상인 '테크래시'가 나타난다는 시나리오다. 생성 AI는 놀랍고 때로는 뛰어난 기능을 보여 주지만 문제는 정확도다. 언뜻 그럴 듯하지만 오류와 잘못된 논리로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만든 콘텐츠는 정보제공자에게 더 높은 정확성을 요구할 수 있어서 기계보다 사람이 직접 만든 결과물을 신뢰하며 더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경쟁 우위를 유지한다. 인간은 계속 창의력을 도약시킬 기회가 많아진다.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에 허위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이 늘게 되면 콘텐츠의 검증 및 삭제 요구가 폭증할 공산이 크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사람의 개입과 신중하게 설계된 거버넌스 프레임워크가 필요해진다. 인간과 기계가 협업해야 하고, 서로의 역할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기계와 대화하는 시대가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류에게 축복일지 재앙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스타트업에 엄청난 기회인 것만은 확실하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중소벤처기업부가 2022년 말 기준 메가존클라우드·아이지에이웍스·트릿지 포함 7개 스타트업이 새롭게 진입, 현재 국내에 22개의 유니콘이 있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유니콘 육성에 힘쓰겠다고도 했다.
크런치베이스, 씨비인사이트, 후룬연구소 등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2023년 2월 현재 세계에 약 2500개의 유니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엠브로커에 따르면 현재 유니콘의 62%가 기술이 비즈니스에 접목된 기업소비자간거래(B2C) 플랫폼이며, 대부분 쉽게 피벗이 가능하도록 완벽한 비즈니스모델보다 필수기능(Minimum Viable Product, MVP)만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치북에 따르면 2018년 이후 탄생한 유니콘은 창업 이후 평균 5년 6개월만에 유니콘이 되며, 유니콘이 된 후 3년안에 엑시트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우아한형제들, 하이퍼커넥트, 쿠팡과 같이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를 통해 엑시트에 성공한 유니콘은 불과 30% 미만으로 나타났으며, 엑시트를 하지 못한 기업은 성장동력을 상실한 채 '좀비콘(Zombiecorn)'이 된다. 대표적인 예로, 회사는 파산하고 전직 CEO가 중형을 선고받은 헬스케어 분야의 '테라노스'가 있으며, 국내에는 2017년부터 5년 동안 회계감사에서 의견거절을 받은 '옐로모바일'이 있다.
정부는 유니콘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유니콘이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고용 창출을 확대하고, 첨단기술 개발과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내총생산(GDP)의 성장을 늘리는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만능 신화가 아니다. 참고로 유니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카우보이 벤처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에일린 리는 첨단기술 여부와 상관없이 투자자 관점에서 투자를 통해 대박 낼 가능성이 짙은 스타트업을 지칭했다.
유니콘을 논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테크기업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왜 해외에는 딥테크 유니콘, 제조업 유니콘이 많은데 국내에는 아무런 기술도 없는 서비스 플랫폼 일색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아한형제들·야놀자 등과 같은 플랫폼기업은 연구 인력만 수백명에 이르며,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비즈니스에 활용하면서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도 미국에서는 모두 기술주로 분류된다.
2014년 인도의 벤처캐피털리스트 스와티 차투르베디가 처음 사용한 딥테크는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고 수면 밑에 있어 보이지 않는 기술로 정의했다. 주로 비즈니스모델 혁신보다 바이오, 에너지, 청정 기술, 컴퓨터 과학, 신소재 등 세상을 바꿀 만한 획기적 기술을 말한다. 또한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를 딥테크 기업이라 부른다. 인공지능(AI)기술로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가 원조격이고, 최근 각광받고 있는 오픈AI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딥마인드는 알파고로 유명하긴 했지만 매년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다. 뛰어난 인재를 유치하고 천문학적인 개발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0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수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다 결국 2014년 구글에 인수됐다. 구글이 인수하지 않았다면 파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15년에 설립된 오픈AI도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적 업무를 해낼 수 있는 기술인 '범용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지만 결과물까지는 요원한 상태다.
딥테크는 초기연구 단계이거나 실체는 없고 개념만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용이 아주 많이 들어가지만 상용화가 이루어진 것은 극히 드물다. 비록 상용화 단계에 도달해도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될지, 어떤 규제가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들 기업에 대한 초기 투자는 대부분 공적 자금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이유로 하이테크(high-tech)와는 별도로 딥테크라는 말이 등장했다. 파괴력은 엄청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말은 뛰어난 기술은 있지만 시장성이 약해서 투자자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딥테크 유니콘, 첨단기술 유니콘, 제조업 유니콘 등 수식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유니콘은 연구기관이 아니며, 엄청난 자본을 타인으로부터 조달해서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영리기업이다. 파괴적 기술혁신이 일상화된 시대, 이제 기업은 기술혁신만으론 독보적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다. 유니콘은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인 만큼 재빠르게 세상에 적응하고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인 것이다. 이 모델이 국민의 편익을 위해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걸림돌이 제거되고, 이에 상응하는 사회·경제 전반의 시스템 개선과 인프라 강화가 중요하다. 이러한 일에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
중앙일보 2023.06.19 00:52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지난 3월의 서울대 입학식에서 축사를 맡았다.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그만큼 오랫동안 고민했다. 밤잠을 설치고, 고쳐 쓰기를 거듭한 끝에, 수많은 당부를 다 버리고서도 남는 딱 한 문장이 뭘까를 찾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제목을 정했다. ‘교과서를 버려라.’ 아이작 뉴턴이 1687년 중력의 법칙을 담은 역작 『프린키피아』를 발표하고 나서 근대적 의미의 물리학이 탄생했다. 뉴턴의 이론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교과서로서 물리 세계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이 교과서에 들어맞지 않는 증거가 하나둘씩 쌓이기 시작했고, 다른 설명논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그처럼 질문했던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었고, 결국 기존의 교과서는 다시 쓰였다.
교과서는 만고불변 진리 아냐
교과서 추종 추격국서 벗어나
선도국 변신 꿈꾸는 대한한국
정답 일단 의심하고 질문해야
‘삼각형 세 각 합 180도’는 조건적 진리
근대 물리학의 탄생을 알린 아이작 뉴턴의 역작 『프린키피아』(1687). 고전 역학의 바탕을 이루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기술하고 있다. [중앙포토]
뉴턴의 이론을 포함해 우리 눈앞에 있는 교과서의 이야기들은 결코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맞다고 생각한 잠정적인 가설의 모음일 따름이다. 삼각형의 세 각을 합하면 180도라는 이야기는 어떤가. 이것도 평면이라는 전제가 없다면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된다. 오목한 말안장 위에 그린 삼각형의 세 각 합은 180도보다 작고, 볼록한 지구본 위의 삼각형의 경우에는 반대로 180도보다 크다. 그래서 삼각형의 세 각 합이 180도라는 법칙도 평면이라는 전제하에서만 성립하는 조건적 진리에 불과하다.
심지어 어떤 이론은 맥락적이기도 하다. 애덤 스미스나 케인스의 경제학 이론은 당시 자신이 경험했던 국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담은 주장이다. 그래서 교과서에 실려있는 이론을 접할 때 주장하는 사람이 처해 있던 당시의 맥락을 제거하고 마치 객관적 법칙인 양 받아들이는 것은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라 죽은 화석을 보는 것과 같다.
결론적으로 교과서는 단지 잠정적이고, 조건적이며, 맥락적인 가설과 주장을 담고 있을 뿐 결코 만고불변의 진리를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교과서의 내용은 틀릴 수도 있고, 구부러질 수도 있으며, 따라서 얼마든지 고쳐질 수 있다. 교과서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잠정적으로 합의한 발자국의 마지막 경계는 보여줄지언정 그 경계 밖에 어떤 새로운 발자국이 찍힐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새로운 교과서는 판례를 쌓아가듯 새로운 질문과 그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축적하는 가운데 다시 쓰인다. 그래서 지금도 그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교과서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으냐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고, 그 덕분에 교과서는 쉼 없이 새로 고쳐지고 있다.
교과서를 쓰는 기술 선도국과 교과서를 수용하는 추격국의 차이도 이 지점에서 갈라진다. 기술 선도국은 교과서적 논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으냐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은 국가다. 그 결과 기존과 다른 새로운 교과서를 끊임없이 생성하는 국가다. 뒤늦게 출발한 추격국은 기술 선도국에서 정립된 교과서를 번역하고, 수용해서, 적용하는 국가다.
우리는 지난 70년간 추격국으로서 기술 선도국이 쌓아 만든 교과서를 충실히 익히고 더 열심히 실행하는 것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공스토리를 써왔다.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추격국이 아니라 선도국으로서 교과서에 도전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의 교과서를 매번 새롭게 써나가고 있는 사례는 말할 것도 없다. K팝은 대중가요가 만들어지는 기존의 논리와 다른 장르를 만들어냄으로써 많은 나라에서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풀리지 않는 난제에 도전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한 수학자가 등장하고, 미래 통신 플랫폼인 6G의 밑그림을 그리는 국제표준화기구를 이끄는 역할도 한국이 맡고 있다.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아직 지도가 없는 흰 눈밭에 첫 발자국을 내보겠다고 덤벼드는 사례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모두 추격국에서 선도국으로의 전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귀한 길잡이 반딧불이다.
‘서울대에서 A+를 받는 비법’ 충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추격국의 어두운 그림자는 곳곳에서 짙게 드리워져 있다. 몇 년 전 ‘서울대에서 A+를 받는 비법’이라는 주제의 다큐멘터리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심지어 농담까지 철저히 필기하고, 교과서와 교수의 의견에 토를 달지 않고, 빈틈없이 암기하는 것이 비법이었다. 교과서와 교수의 논리를 질문 없이 수용해야 좋은 성과가 나오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교과서가 탄생할 수 없다. 교실에서뿐만 아니다.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를 도입하려다 좌초된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새로운 기업가적 시도가 제도적 경직성이나 촘촘한 기존 이해관계망에 짓눌려 원천 봉쇄되는 환경에서는 기존의 교과서와 다른 혁신적 신산업을 기대하기 어렵다.
추격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뚫고 하나둘 반짝이는 반딧불이 날아오르는 바로 이때를 놓치지 않고, 진정한 선도국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 출발은 최초의 질문이다. 이것이 정답이라거나 교과서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일단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다른 관점과 판단 기준, 다른 대안적 세상에 대한 상상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손을 들어야 한다. 그런 최초의 질문이 제기되면, 힘겹게 날아오르는 반딧불이를 반가워하고 소중히 감싸 안듯, 장하다고 칭찬하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선도국으로서 우리가 다시 쓸 교과서의 귀한 싹이기 때문이다. 이제 선도국으로서의 한국이 던지는 최초의 질문을 찾고, 널리 알리고, 격려해야 한다. 그 여정을 시작할 때다.
※베스트셀러 『축적의 시간』을 기획하고 본지에 같은 이름의 칼럼을 썼던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가 5주마다 ‘최초의 질문’이란 제목으로 다시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중앙일보 2023.01.02 00:50 업데이트 2023.01.02 14:20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평소 메신저 서비스를 잘 이용하지 않지만, 700명 넘게 모여 있는 메신저 방 하나는 늘 열어둔다. 오는 5일부터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비자전자제품박람회(CES) 참가자들의 방이다. 행사일이 다가오면서 알림 소리가 더 바쁘다. 가성비 좋은 숙소와 햄버거집 정보가 오가다가 이제는 전시 부스에 한 번 들러 달라는 청년창업가의 부탁과 관계자들을 서로 소개해주는 정보가 쉼 없이 쏟아지고 있다. 시끌벅적한 오일장 분위기가 따로 없다.
이번 CES에는 미국·중국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수의 기업이 참가한다. 이래저래 한국인만 1만 명이 넘을 거란 소문이다. 젊고 활기찬 이 메신저 방의 열기를 접하다 보면 국내 뉴스에 답답하기만 했던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다.
한국의 혁신기술 전 세계가 주목
올 CES에서는 삼성전자가 46개로 가장 많은 혁신상을 받는 것을 비롯, 국내 대기업과 젊은 벤처기업들이 혁신상을 휩쓸고 있다. ‘닷 패드(Dot Pad)’라는 실시간 촉각 디스플레이를 출시한 벤처기업은 3개 부문의 혁신상을 받으면서 시각장애인들의 애플이라는 찬사까지 듣고 있다. 어느새 CES를 포함하여 세계 3대 정보통신분야 전시회로 불리는 유럽의 전자정보기술전시회(IFA)와 스페인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까지 모두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한국의 혁신기술을 선보이는 무대가 되고 있다.
올 CES 무대 휘젓는 한국 기업들
개도국서 일어선 유일한 국가로
과거 ‘추격자 방식’ 더는 안 통해
주력산업 패러다임 과감히 깨야
‘중력의 틀’서 벗어난 상대성이론
규제 혁파로 ‘제2의 비상’ 이뤄야
불과 반세기 전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던 때를 생각하면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경제개발을 시작했고, 심지어 한국보다 몇 배나 높은 소득 수준에서 출발했던 그 많은 개발도상국은 오늘 CES 전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데, 왜 한국만 유독 예외가 되었는가.
가장 근거 있는 미래예측은 정립된 이론을 따르는 것이다. 대포를 쏘았을 때 얼마나 멀리 갈지는 뉴턴의 중력이론으로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경제발전의 궤적을 예측하는 데도 상품공간이론이라는 유사한 종류의 중력이론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가난한 개발도상국은 대부분 농업이나 섬유 같은 저기술 산업을 영위하고 있다. 발전해보겠다고 나서면 농산물 포장이나 섬유염색 정도를 시도하게 된다. 기존의 노하우와 가깝지만 기술적으로 조금 수준이 높고 부가가치가 있는 산업을 하는 게 그나마 실패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한 단계씩 기술수준을 높여가다 보면 결국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이론이다.
“기존에 해오던 대로”의 유혹
지난 2020년 미국 라스베가스에 열린 CES에 전시된 LG 올레드 웨이브를 관람객들이 구경하고 있다. 55인치 LG올레드 스크린 200장으로 구성됐다. 올해 CES는 5일부터 열린다. [AFP=연합뉴스]
알아듣기는 쉽지만, 이 이론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이렇게 한 단계씩 진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이 조금 더 수준 높은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먹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데 있다. 그저 오늘 농사지어 내일 먹고 살면 되는데, 굳이 새로운 것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게 어려운 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기존 산업에 거미줄처럼 얽힌 이해 관계망이 새로운 산업으로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상품공간이론은 경제발전 이론 가운데 뉴턴의 중력이론과 가장 닮았다. 기존에 하던 것을 계속하는 게 편하다는 관성이 엄청난 중력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상품공간이론이 예측하는 것과 달리 기존에 해오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도전하는 ‘도약’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해보지 않던 것이니 실패 가능성도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고, 그 두려움 때문에 마음 내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도약을 이뤄낸 개발도상국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 유일한 예외가 바로 한국이다. 1960년대 전형적인 농업국가였던 한국이 놀랍게도 단 한 번에 반도체·자동차·철강·기계·화학·조선 등 당시 상황으로는 비약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도전을 했다. 선진국의 많은 싱크탱크가 상품공간이론과 유사한 중력이론에 근거해 너무 위험한 도전이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과감히 중력을 거부하고 날아올랐고, 지난 50년간 수많은 국가의 경제발전 역사에서 유일한 성공 사례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
중력을 거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과학기술 분야의 패러다임 이론과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19세기까지 뉴턴의 고전역학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던 상황에서 물리학자들은 다른 이론적인 설명을 시도하기가 어려웠다. 기존의 뉴턴 패러다임 안에서 작은 개선 아이디어를 내고, 학계에서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것은 이 중력을 뚫고 상대성이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도약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면 모든 성공적 혁신은 기존의 것을 하면 편하다는 중력을 거스르고 도약을 시도한 결과다. 경제발전이든, 과학기술이든, 심지어 개인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이 도약 과정에서 한국은 최소한 산업 분야에서만큼은 오랜 정체를 벗어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자는 국가적 공감대와 전략이 있었다. 게다가 사람과 과학기술이라는 도약의 두 가지 필수 인프라에 미친 듯이 투자했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 진학률로 증명되듯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도 마찬가지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대를 막 넘어서고 있던 1990년대 중반에 이미 GDP의 2%가 넘는 돈을 연구개발에 쏟아부었다. 당시 세계 9번째로 높은 수준으로, 앞선 8개 나라는 모두 전통적인 기술선진국들이었다. 저소득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1만 달러를 넘은 중진국 가운데도 이처럼 대대적으로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국가는 전무후무했다. 이 두 분야의 투자는 정권의 정치적 성향과도 무관하게 정부 예산편성에서 늘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기업 부문에서도 연구소를 설립해 기술자를 채용하고 기술개발에 나서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가난한 집일수록 오늘 당장 돈 쓸 일이 많은 법인데, 국가적으로 사람과 기술에 목숨 걸듯 투자한 것은 현재 급하지 않지만, 미래 중요한 일에 신경을 썼다는 증거다. 투자의 효과가 당장 내 임기 안에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꾸준히 투자한 것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어쨌든 그 덕분에 다들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한 놀라운 도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
2023년을 맞아 여러 연구소와 컨설팅 기관, 전문가들이 나름의 이론에 근거하여 한국 산업의 미래를 예측하는 자료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론은 이론, 예측은 예측일 뿐이다. 상품공간이론은 현재 우리를 둘러싼 관성이 중력으로 작용하여 도약이 쉽지 않다는 강력한 이론적 예측을 제시했지만, 결국 이 예측을 뛰어넘는 도전, 즉 중력을 거부하는 도약을 할 때 비로소 혁신의 역사를 쓸 수 있다. 예측은 앞에 절벽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 그 절벽을 돌파하든 날아오르든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의 간절함과 의지, 그리고 이를 반영한 전략이 있을 때다.
지금 한국은 또 다른 중력에 사로잡혀 있다. 과거 성공적 도약의 결과로 얻게 된 주력산업의 패러다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고, 추격기 동안 유효했던 산업구조와 교육의 틀이 여전하며, 효율적 실행을 뒷받침해 온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 또한 강고한 중력으로 우리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에너지 기술 미흡
이번 CES만 봐도 그렇다. 올해 전시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다른 나라 유니콘 기업의 주제 발표를 부럽게 듣기만 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의료 빅데이터와 관련 기술이 있음에도 국내의 각종 규제에 막혀 젊은 기업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해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핵심 키워드인 에너지 절감 분야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가격 체계가 보조금과 규제의 틀에 묶여 있는 탓에 에너지 절감 서비스에 기꺼이 돈을 쓸 사람이 없다. 그래서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를 맞아 특히 유럽의 청년 벤처기업가들이 기발한 기술과 과감한 아이디어로 도전하는 모습을 팔짱 끼고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 미지의 기술과 산업으로 과감히 뛰어들 수 있도록 한국 사회의 틀을 바꿀 때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지금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도전했던 그때와 다르다. 눈물겨운 노력으로 쌓아 올린 세계적인 제조역량이 있고, 과학기술 역량 또한 많이 축적되었다. 추격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 더 역량이 뛰어난 젊은 세대들도 있다. 그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도약대가 있다.
2023년은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낸 첫 번째 도약의 역사책을 덮는 반환점이기를 바란다. 나아가 다시 한번 중력을 거부하고 비상하는, 새로운 재도약의 역사책을 쓰는 기점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중앙일보 2022.12.05 00:37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2021년 3월 1일 강원도 영동지역에 88㎝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사망자가 나오고 90명 이상의 부상자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숨 가쁘게 전해졌다. 간선도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사람들은 3시간에 1m도 움직이지 못했는데, 자동차 연료가 다 떨어져 간다고 불안에 떨었다. 영동 일대 시민들의 삶이 글자 그대로 올스톱 되었다.
기록적인 폭설이니 어쩔 수 없다 싶었지만, 제설차가 예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것에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알고 보니 해당지역 지자체가 12월 10일에서 3월 10일까지 계약해오던 기존의 제설장비 임차기간을 예산 효율성을 위해 1월과 2월 중 50일간만 임차하는 것으로 단축했다. 기존 기상자료를 분석한 결과 12월과 3월에는 폭설이 ‘거의’ 없었다는 패턴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포털기업 화재에 국가 전반 혼란
초연결사회 속 위기확산 빨라져
효율성 클수록 외부 충격에 취약
0.1% 리스크가 시스템 무너뜨려
위기에 놓인 글로벌 공급·생산망
미래 불확실성 줄이는 기술 필요
지난해 영동지역 폭설이 남긴 것
지난해 3월초 예기치 않게 내린 폭설로 강원도 인제군 미시령 터널 요금소 일부 구간 차로가 통제됐다. [뉴스1]
안타깝게도 시민들은 3월의 폭설에 갇혔고, 지자체의 터무니 없는 행정에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곰곰이 따지고 보면 욕할 일이 아니다. 효율적인 재정 운영이라는 목표를 가진 공무원들이 재정을 줄일 방법을 찾아 열심히 노력한 끝에 무려 3억4000만원의 세금을 아꼈다.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본다면 분명 칭찬받을 일이었다. 만약 확률이 낮더라도 치명적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취약성’을 추가로 고려했다면 의사결정이 달라졌을 것이다. 대신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는 3억4000만원의 추가비용을 기꺼이 용인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중국 산둥성에 있는 자동차용 전선 회사 몇 개가 가동을 중지했다. 납품물량과 일정을 딱 맞게 짜놓았던 국내 자동차 회사로서는 생산라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2021년 3월과 4월에는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일본 르네사스와 대만 TSMC 공장에서 화재가 났고, 자동차 회사들은 반도체를 구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차질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자동차 회사들은 재고 제로를 목표로 효율성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해온 기존의 관행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적정 재고수준을 높이거나 복수의 공급망 대안을 마련하는 등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모두 아무 일 없던 시기에는 전혀 들일 필요가 없었던 취약성 대비 비용이자 리스크 프리미엄이다.
‘월마트 물가’는 얼마나 지속될까
현대 문명은 하나의 특징적인 발전 패턴을 가지고 있다. 바로 생산성 혹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마치 올림픽 구호처럼 ‘더 빨리’ ‘더 적은 비용’이 목표다. 전력·통신 등 인프라 시스템을 중앙집권형으로 구성하는 것도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가능한 정교한 예측과 과학적 관리법으로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성이 극대화되도록 현대 문명을 조직해왔다.
지난 100년간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도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지금의 그물망과 같은 생산망을 형성할 수 있었다. 같은 품질에 조금이라도 더 싸게 공급해줄 수 있는 납품업체가 있다면, 지구 그 어느 구석에서라도 찾아내 연결하면서 공급망을 확장해왔다. 그 덕분에 인류는 옷 한 벌 살 돈으로 두세 벌 살 수 있는 소위 ‘월마트 물가’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림자 없는 빛이 어디 있으랴. 이렇게 정교하게 직조한 경제·사회 시스템은 역설적으로 작은 외부적 충격에도 극히 취약하게 되었다. 99.9%의 평화로운 상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 0.1%의 낮은 확률에 불과하던 위기가 현실화하는 순간 시스템이 올스톱되는 경직성을 보인다. 강원도의 폭설로 멈춰선 영동지역이나,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하네스 공급 차질로 올스톱된 자동차 생산라인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취약성은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팬데믹이 터지고 미국 사회가 보인 처참한 혼란의 양상도 그렇다. 그렇게 물 흐르듯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던 선진국 시스템의 이면에 상상할 수 없는 취약성이 잉태돼 있다는 것을 알고 세계는 경악했다. 멀리 볼 것 없이 지난달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로 온 국민의 삶이 사실상 일순간 정지됐던 경험도 마찬가지다.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취약성이 높아지는 현상은 논리적으로 피할 수 없는 상충관계다. 높은 효율성을 위해 취약함을 각오하거나 아니면 취약함에 대비하기 위해 일정 부분 효율성을 희생해야 한다.
단일품종 바나나, 취약성 대표 사례
우리의 먹거리도 효율성과 취약성의 상충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인류는 모두 캐번디시라는 단일한 품종의 바나나를 먹는다. 단일 품종의 최대 이익은 당연히 생산 효율성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병충해나 환경변화와 같은 외부 영향에 취약하다는 문제를 시한폭탄처럼 안고 있다. 1950년대까지 옥수수의 단일 품종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그로 미셀 종은 ‘파나마병’이라는 균류가 퍼지면서 초토화됐고,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지금 우리가 먹는 캐번디시 종이다.
그러나 이 역시 최근 변종 파나마병인 TR4 곰팡이균이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바나나 팬데믹’이라고까지 할 정도다. 전 세계 옥수수도 사실상 단일 품종이기 때문에 유사한 문제에 노출돼 있다. 옥수수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가축사료의 가격과 수급에 영향을 미치고, 육류와 유제품 및 계란 가격뿐만 아니라 이들을 재료로 하는 거대한 글로벌 식품체인 전체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 파급효과는 현재의 반도체 수급위기로 인한 제조업의 글로벌 공급망 혼란을 훨씬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모두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어쩔 수 없이 안게 된 취약성의 그림자다. 이 때문에 최근 식품 분야의 기술발전 방향은 단일 품종의 더 높은 효율성을 추구하기보다 취약성을 보완하거나 다품종을 개발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투자 우선순위 재점검할 때
과거에도 외부 충격으로 인한 사회와 경제시스템의 취약성은 항상 드러났지만, 대체로 지역 혹은 국가단위에 한정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발전 덕분에 세계의 경제망과 사회 시스템이 고도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한 곳에서 발생한 위기의 영향이 곧 글로벌 차원의 쓰나미 같은 파괴적 영향으로 확산할 수 있다. 이제 눈 가리고 무작정 질주하는 말처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달려온 지금의 발전 궤적이 과연 지속가능한 추세인지 되돌아볼 때다.
오늘도 연구실과 기업 현장에서 신기술과 신제품을 만들어내고자 밤새고 있는 연구자와 기술자·기업가들은 자신도 모르게 더 높은 효율성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100년간 ‘효율성’을 추구해 온 기술 궤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취약성’이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생각한다면 미래를 지배할 새로운 기술의 궤적을 창출할 수도 있다. 앞으로는 취약성에 대비하는 것이 하나의 큰 시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개별 기업의 시각과 달리 국가적 관점에서는 모든 국민이 의존하는 국가 시스템의 취약성에 더 철저히 대비하고 투자해야 한다. 투자 우선순위부터 재점검이 필요하다. 통신이나 전력과 같은 국가 핵심 인프라에 투자할 때도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거나 투자비용을 절감하는 것 못지않게 위기 때 취약성에 대한 대응력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백업이나 복구·보안과 관련된 기술과 투자의 가치가 달라 보인다.
복구·보안 기술이 중요한 시대
“어떤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세금을 써야 할까”라는 질문에도 효율성 못지않게 취약성을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술 선진국들이 국가전략기술을 이야기할 때 사이버보안이나 식품안전, 위생 관련 기술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장 돈이 되느냐의 문제를 떠나 낮은 확률이지만 위험이 현실화했을 때 국민 전체가 입게 될 피해가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흔이 넘은 한 기업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잊히지 않는다. 기술자로 출발해서 기술기업을 일구었고,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는 존경할 만한 기업인이었다. 수십 년 기업을 키워오면서 얻은 인생교훈 한 가지를 귀띔해주었다. “좋은 기회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치명적인 나쁜 일에 미리 대비하는 게 중요하더라.”
좋은 일이야 있으면 좋은 것이고, 없어도 다음 기회를 기다리면 되지만, 한 번의 치명적인 나쁜 일을 막지 못하면 기업이 망하기 때문이다. 같이 창업했던 동년배의 수많은 기업가가 좋은 기회를 놓쳐서가 아니라 대비하지 못했던 한 번의 나쁜 일로 사라져가는 것을 수십 년 보고서야 얻은 한 줄의 교훈이라고 했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중앙일보 2022.08.08 00:49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막막할 때면 1984년 미국 슈퍼볼의 애플광고를 되돌려보곤 한다. 칙칙한 흑백화면에 똑같이 머리를 밀고, 회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된 의자에 앉아 커다란 스크린을 보고 있다. 한결같이 멍한 눈동자와 표정으로 스크린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지배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유일하게 컬러로 등장하는 한 여성이 뛰어들어, 커다란 망치를 스크린에 던진다. 스크린이 폭파되는 바로 그 순간 ‘애플이 매킨토시 컴퓨터를 출시한다’는 자막이 올라간다. 광고역사에서도 유명한 이 1분짜리 비디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IBM이 지배하는 세상은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은 세계이지만, 애플은 개인의 취향과 권리가 존중되는 다른 세상을 꿈꾼다. 애플의 컴퓨터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다.’ 애플은 기술과 제품의 우수성이 아니라 그것들이 지향하는 대안적 세상의 가치를 선언하고자 했다.
2007년 최초의 아이폰이 출시를 예고했을 때 전 세계 많은 젊은이들이 매장 앞에서 며칠씩 텐트를 치고 기다렸다. 당시 우리나라가 출시하던 휴대폰들도 성능 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차가운 눈을 맞으며 노숙을 하던 젊은이들이 열광한 것은 제품의 지향이지 성능이 아니었다.
혁신기술은 비전 담은 질문서 시작
기술선진국, 서사 만들 힘 가진 나라
노벨상, 새로운 장르 연 사람이 수상
대안적 세상 뭔지 고민할 수 있어야
1984년 미국 슈퍼볼에 등장한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 출시 광고. 모두가 지배자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을 때 한 여성이 망치로 스크린을 부숴버린다.
기술은 생물처럼 진화한다. 그러나 두 진화과정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변이의 의도성이다. 생물은 다음 세대로 유전정보를 넘겨주는 과정에서 무작위적인 오류에 의해 변이가 발생한다. 반면 기술은 기업가든, 연구자든, 소비자든 반드시 인간의 의도에 의해 변이가 일어난다. 혁신적 의도에서 혁신적 기술을 이끄는 최초의 질문이 탄생한다.
더 싸게, 더 빠르게, 더 효율적인 것을 만들고 싶다는 것도 인간의 의도이지만, 우리의 마음에 깊숙한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다른 세상을 희망하는 의지다. 인간은 도구와 제작의 동물(Homo Faber)이기 전에 서사의 동물(Homo Narrans)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희구하고, 옳고 그름에 목숨을 내놓고, 죽일 듯이 불화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합의를 해가면서 문명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서사가 옛날의 서사를 대체하면서 그들을 뒷받침하는 신기술들이 기술진화의 역사에 끊임없이 등장했다.
1984년 미국 슈퍼볼에 등장한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 출시 광고. 모두가 지배자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을 때 한 여성이 망치로 스크린을 부숴버린다.
수년 전 듣고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 한 탁월한 디자이너의 에피소드가 있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이렇다. 그는 수년간 국제적인 컨퍼런스에 참여할 때마다 디자인의 구루라는 리더들에게 한 소식을 듣고자 집요하게 질문을 했다. ‘다음 디자인의 트렌드는 어떻게 될까요?’ 그 질문을 들은 구루들은 대게 심드렁하게 답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마케팅하는 사람들이 잘 알지 않을까요?’ 등등. 어느 해 질문을 바꾸었다. ‘다음 디자인의 트렌드는 어떻게 되어야 하나요?’ 이전까지 그렇게 들은 체 만체하던 디자인의 구루들이 갑자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쏟아냈다. ‘다음 디자인의 트렌드는 반드시 이렇게 가야 합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듯도 하지만, 반드시 주류의 견해라고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과 다른 디자인의 세상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자신의 세계관과 서사를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떠올릴 때마다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과 추종하는 사람, 오리지널과 패러디, 라이센서(licensor)와 라이센시(licensee), 문제 출제자와 문제 해결자의 차이를 절감한다. 그래서 후배 연구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거듭 들려주면서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야심을 가지라고 권한다. 그 어떤 다른 상상이 있어야 자기만의 장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다른 대안적 세상을 상상하는 힘은 현재의 상태를 바꾸는 원동력이다.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는 지금 세상이 정의롭지 않다고 느낀다면 대안적 세상을 상상해보라고 권한다. 당신이 오늘 죽고 내일 갑자기 다른 세상에 태어난다고 하자. 워렌 버핏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길거리의 노숙자로 태어날 수도 있다. 어떻게 태어날지는 사전에 알 수 없지만, 어떤 세상에 태어나고 싶은지는 지금 당신이 결정할 수 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모든 것을 갖는 세상? 노력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소득을 강제로 똑같이 분배하는 세상? 등등. 이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여러 대안적 체제를 비교해서 사회적으로 최약자의 위치에 처한 사람에게 최대한의 보상을 하는 시스템을 선택한다. 우연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이 그렇듯 워렌 버핏으로 태어날 수도 있지만, 운이 나쁘면 노숙자로 살아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최소 수혜자에 대한 최우선 배려의 원칙이라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현재의 시스템과 추세를 막연히 받아들이기 보다 대안적 세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현재와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여정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의론처럼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답의 단초도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힘에서 찾을 수 있다.
1984년 미국 슈퍼볼에 등장한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 출시 광고. 모두가 지배자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을 때 한 여성이 망치로 스크린 을 부숴버린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수많은 기업과 연구소, 대학의 실험실에서 또 그만큼 많은 연구자와 기술자·기업가들이 새로운 제품과 혁신적 기술을 만들어내기 위해 밤을 새고 있다. 혁신적 기술은 기존의 기술보다 성능이 더 뛰어난 것이 아니라 현재와 다른 대안적 세상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미래학자 후안 엘리케스도 미래기술을 전망할 때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가 던진 질문의 예시 중 하나다. 세계적으로 10억 마리의 돼지, 14억 마리의 소, 200억 마리의 닭을 사육하고 도살하는 현재의 시스템, 이들을 키우기 위해 전 세계 1년치 농업 수확물 중 절반을 동물사료로 쓰고 있는 이 세상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대안적 세상을 상상할 수 없을까? 동물사육이라는 1만년 역사의 오래된 세상을 뒤집는 상상을 한다면 ‘대체육’이라는 기술의 대안이 눈에 들어온다. 대체육 기술이 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분야를 만들어낸 질문과 상상의 방향은 명확하다. 모든 기술과 제품, 서비스에서 대안적 상상은 가능하다. 인간의 삶을 한없이 편하게 해주는 디지털 세상을 다들 찬양하지만,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도 모른채 알고리즘이 모든 의사결정을 대신해주는 세상을 원하는가? 이런 상상들로부터 대체불가능한 서사를 가진 혁신적 기술이 싹튼다.
개인을 넘어 여러 사람들이 대안적 세상에 대한 담론을 공유하게 되면, 기술진화의 경로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규제가 형성된다. 한없이 커져만 가던 승용차가 작아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대기청정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연비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동차를 아예 팔지 못하도록 강제하면서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연비개선을 위한 기술개발에 나섰고, 컴팩트한 디자인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자들도 그 방향으로 논문과 특허의 주제를 찾기 시작했다.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규제가 생기면서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 탄소제로 기술이 화두가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기후환경에 대한 위기를 공유했고, 지금과 다른 세상이 필요하다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1984년 미국 슈퍼볼에 등장한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 출시 광고. 모두가 지배자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을때 한 여성이 망치로 스크린을 부숴버린다.
기술선진국은 뛰어난 기술력이 아니라 대안적 세상에 대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힘(discoursive power)을 가진 국가다. 글로벌 기술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기업의 정체도 마찬가지다. 더 성능이 뛰어난 기술과 제품이 아니라 대안적 세상을 지향한다는 서사를 가진 기업이다. 탁월한 연구자는 어떤가? 노벨상은 기존 연구를 개선한 연구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지금껏 인류가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을 꿈꾸고 그 지향으로 첫발을 내딛는 사람, 즉 새로운 장르의 문을 연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과학기술은 사실을 다루기 때문에 옳고 그름, 즉 가치를 따지는 당위의 영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영혼이 없는 과학기술자’라는 표현이 가끔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과학기술자가 되려면 대안적 세상을 상상하는 영혼을 가져야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었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가 참조하고 추종할만한 가치와 대안적 세상에 대한 담론을 제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대안적 세상은 무엇인가?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